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현덕왕후 (문단 편집) === 세자빈이 되다 === [[순빈 봉씨]]마저 폐위되어[* 주술, 거짓 임신 등 여러 사고를 치다가 끝내 궁녀 소쌍과의 [[동성애]] 동침이 문제되었다.] [[세자빈]] 자리가 공석이 되자 새로 간택하지 않고, 세 후궁 중 한 명을 [[세자빈]]으로 승급시키기로 하였다. 이때 양원 권씨가 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 [[문종(조선)|세자]]는 [[숙빈 홍씨|승휘 홍씨]]를 세자빈으로 삼고 싶어 했지만, [[세종(조선)|세종]]은 "이미 [[경혜공주|딸]]을 낳았으며 홍씨보다 나이도 많고 품계도 높은[* 이때 권씨는 양원으로 책봉되어 있었다. 첫째 딸의 사망 기사에 승휘 권씨의 딸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경혜공주]]를 낳은 후 양원으로 책봉된 듯 하다.] 권씨가 합당하다."고 하였다. [[세자빈]]으로서 [[결혼|가례]](嘉禮)를 치르지 않고, [[세자빈]]으로 봉(封)한다는 교지만 받았다.[* 출처 : [[http://sillok.history.go.kr/id/kda_11812029_002]]] 오늘날로 비유하면 혼인신고만 하고 결혼식은 올리지 않았다. 두 명의 [[세자빈]]을 폐하고 세 번째 세자빈을 들인 것이기 때문에 절차를 간소하게 하였다.[* 원래 조선왕조는 가례 등 의식절차와 예법을 중시했던 왕조이기 때문에 [[단종(조선)|단종]]을 낳은 후에 가례를 정식으로 치르려고 했을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낳자마자 죽어버렸기때문에 결과적으로 봤을 때 가례를 “못”치른 것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