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현덕왕후 (문단 편집) === [[단종(조선)|원손]]을 낳다 === 세자 [[문종(조선)|문종]]의 아버지 [[세종(조선)|세종]]의 기대대로 권씨는 [[1441년]](세종 23년) [[7월 23일]]에 [[경복궁 자선당]]에서 [[단종(조선)|원손]]을 낳았다. [[세종(조선)|세종]]은 크게 기뻐하며 대사면령을 내렸는데 그 자리에서 큰 초가 떨어졌다. [[세종(조선)|세종]]은 이를 불길하게 여겨 떨어진 초를 당장 치우게 했다. 실제로 권씨는 단종을 낳은 지 한 달 후에 [[산욕열]]로 사망하였다. 향년 23세. 권씨가 세상을 떠난 후, [[세종(조선)|세종]]의 [[후궁]]인 [[혜빈 양씨]]가 직접 자신의 [[모유|젖]]을 물려가며 [[단종(조선)|단종]]을 길렀으며 그 동복누나인 [[경혜공주]]도 돌보았다. 권씨 사후에 [[문종(조선)|문종]]은 더 이상 정실 부인을 들이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문종이 세자 시절에 두 차례나 세자빈이 폐출당하는 사태를 겪었고 세번째 부인인 권씨마저 산후에 숨지는 바람에, 결혼을 세 번이나 했는데 모두 비극으로 끝나버린 충격으로 네번째 부인을 들이지 않은 것 아니냐는 추측이 있다. 두번째 부인인 [[순빈 봉씨]]가 폐출될 때에도 [[세종(조선)|세종]]과 [[소헌왕후]]는 신중을 기했다고 하는데 그도 그럴듯이 이미 [[휘빈 김씨]]가 폐출된 상태에서 봉씨마저 폐출되면 이는 세자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비춰질 소지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는 [[문종(조선)|문종]]이 즉위 2년만인 [[1452년]](문종 2년)에 서거하여 [[단종(조선)|단종]]이 어린 나이(12살)에 즉위한 후에 야심 많은 숙부들의 위협에 노출되는 악영향을 초래했다.] [[문종(조선)|문종]] 즉위 후 행사에서 [[왕비]] 역할이 필요할 때에는 [[후궁]] [[숙빈 홍씨]]가 대행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