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현종(고려) (문단 편집) == 가족 관계 == || 본인 || 부모 || 조부모 || 증조부모 || ||<|13> 현종[br] ||<|6> [[안종(고려)|안종]] ||<|3> '''[[태조(고려)|태조]]''' || || [[세조(고려)|세조]] || || [[위숙왕후]] || ||<|3> [[신성왕후]] || || [[김억렴]] || || || ||<|7> [[헌정왕후]][br] || ||<|3> [[대종(고려)|대종]] || || '''[[태조(고려)|태조]]''' || || [[신정왕후(고려)|신정왕후]] || ||<|3> [[선의왕후]] || || '''[[태조(고려)|태조]]''' || || [[정덕왕후]] || 출신이나 권력 기반이 매우 약해 자신의 [[할아버지]]인 [[태조(고려)|태조]]가 한 것처럼 정략 결혼을 통해 입지를 다졌다. 그래서 후비와 자식이 매우 많다. * 제1비: [[원정왕후]] 김씨 - [[성종(고려)|성종]]의 딸 * 공주(?): 적경궁주(積慶宮主) → 효혜궁주(孝惠宮主) 1030년 2월 고려사에 '적경궁주(積慶宮主)가 죽자 시호를 효혜(孝惠)라 하고 평릉(平陵)에 장사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현종의 다른 공주들과 같이 시호에 효(孝)자가 들어가 있어 원정왕후의 기록되지 않은 자녀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1030년 7월에 사망한 [[원화왕후]] 소생의 적경공주(積慶公主)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고려 왕실은 왕녀를 공주(公主)가 아닌 궁주(宮主), 원주(院主), 전주(殿主), 택주(宅主)로도 책봉했기 때문이다. * 제2비: [[원화왕후]] 최씨 - [[성종(고려)|성종]]의 딸 * 차남: 왕수(王秀) 고려사 종실 열전에는 누락되어 있으나 고려사 세가 '현종'편에 탄생이 기록되어 있다. * 장녀: [[효정공주]] * 차녀: 천수전주(天壽殿主) * 제3비: [[원성왕후]] 김씨 - [[김은부]]의 딸 * 장남: [[덕종(고려)|덕종]] * 3남: [[정종(고려 10대)|정종]] * 3녀: [[인평왕후]] 김씨[* 안산 김씨(安山 金氏)] - [[문종(고려)|문종]] 제1비 * 4녀: 경숙공주(景肅公主) * 제4비: [[원혜왕후]] 김씨 - [[김은부]]의 딸 * 4남: [[문종(고려)|문종]] * 5남: [[정간왕]] * 5녀: 효사공주(孝思公主) → [[효사왕후]] 김씨[* 안산 김씨(安山 金氏)] - [[덕종(고려)|덕종]] 제3비 덕종의 다른 부인들과는 같은 돌림의 시호를 공유하지 않고, 오히려 자매들과 같은 돌림의 시호를 공유한 것으로 보아 본래 효사공주(孝思公主)였다가 덕종이 즉위하며 추존된 것으로 보인다. * 제5비: [[원용왕후]] 류씨 - 경장태자(敬章太子)[* [[성종(고려)|성종]]의 친동생]의 딸 * 제6비: [[원목왕후]] 서씨 * 제7비: [[원평왕후]] 김씨 - [[김은부]]의 딸 * 6녀: 효경공주(孝敬公主) * 후궁: [[원순숙비]] 김씨 - [[김인위]]의 딸 * 7녀: [[경성왕후]] 김씨[* [[경주 김씨]]] - [[덕종(고려)|덕종]] 제1비 * 왕녀: 경성왕후를 “경흥원의 장녀”로 서술한 것과 관련되어, 최소 두 명의 딸을 두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후궁: [[원질귀비]] 왕씨[* [[청주 이씨]]→[[사성정책|사성]] [[개성 왕씨]]] - [[왕가도]]의 딸 * 후궁: 귀비 유씨(貴妃 庾氏) 궁인 출신으로 1025년 귀비로 책봉된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한자만 놓고 보면 후삼국통일전쟁의 명장 [[유금필]]과 같은 평주 유씨이다. 현종 시기 활약하여 문하시중까지 오른 [[유금필]]의 손자 [[유방(고려)|유방]](庾方)의 딸일 가능성이 있다. * 후궁: 궁인 한훤영(宮人 韓萱英)[* 양주 한씨(楊州 韓氏)] - 한인경(韓藺卿)의 딸 * 6남: [[왕충(고려)|검교태사 왕충]] - [[덕종(고려)|덕종]]의 왕녀와 혼인 * 후궁: 궁인 이씨(宮人 李氏) - 이언술(李彦述)의 딸 * 후궁: 궁인 박씨(宮人 朴氏) - 박온기(朴溫其)의 딸 * 8녀: 아지(阿志) - 검교소감(檢校少監) 정민상(井民相)과 혼인 《고려사》 <후비전>에는 여기까지 나오지만 여기에 누락된 아내도 있었다. 현종 20년 2월 궁인 한씨의 부친 한빈경(韓彬卿)을 '겸 태자빈객 동지중추사 계국(同知中樞使 桂國)'으로 삼았다는 내용이 있는데, 한빈경은 한인경의 동생으로 여겨진다. 또 현종 22년 3월 상궁 한씨(尙宮 韓氏), 상침 김씨(尙寢 金氏), 상식 한씨(尙食 韓氏), 상침 서씨(尙針 徐氏)[* '상침(尙食)'은 [[당나라]]의 '상공(尙功)'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 정확히는 상공(尙功)은 의복에 관련된 일을 관장하는 것, 상침(尙針)은 바느질에 관련된 일(의복, 침구 등)을 관장하는 것이다.] 를 임명하는데 두 한씨는 한인경의 딸과 한빈경의 딸이 확실해 보이고, 상침 김씨가 원순숙비 김씨, 상침 서씨가 [[원목왕후]] 서씨일 가능성도 있는데, 이미 궁인 신분을 벗어났음에도 《고려사》에 여전히 궁인으로 표기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 원목왕후와 원순숙비 김씨는 사후 계실이 아닌 측실로 간주된 것으로 명확하게 서술되어 있다. [[원정왕후]], [[원화왕후]], [[원용왕후]]는 [[신정왕후]]의 직계 후손들이고, [[원성왕후]], [[원혜왕후]], [[원평왕후]] 자매는 3명의 아들이 국왕으로 즉위했으므로 정실로 간주된 것이 명확하다. 다만 원목왕후는 1022년 숙비에, 원순숙비는 1024년 덕비에 책봉되는데 1030년에 관등이 다시 내려가 시호도 못받은 상궁 한훤영보다도 낮은 상침과 상침이 되었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어려운 지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선종 3년(1086년) 기록에 따르면 [[이예(고려)|이예]]의 아내에게 왕태후의 상궁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여관으로 궁관의 관직을 받았다고 해도 유부녀일 가능성은 충분히 높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