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현종(당) (문단 편집) === 대[[돌궐]] 전쟁 === 당현종은 위황후 일파가 일으킨 혼란을 수습하자마자 당나라의 숙적인 [[돌궐 제2제국]]을 정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묵철가한]]이 화친을 요청했으나 현종은 이를 거부했고, 북벌을 진행했으나 토번 제국의 공격과 거란 전선에서의 대패로 인해 대돌궐 북벌은 실패했다. 그러나 돌궐 제국 내에서 내전이 일어났다는 전령을 들은 현종은 이에 돌궐 산하의 부족들을 초유하는 등 적극 개입했고, 결국 묵철가한은 [[발야고]](바이르쿠)의 패잔병에 의해 암살당했다. 이렇게 [[측천무후]]의 치세부터 [[예종(당)|예종]]의 치세에 이르기까지 [[돌궐]] 제2제국의 가한으로 군림하며 돌궐을 전성기에 올려놓고 하북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묵철가한]](카파간 카간)이 무척이나 허무한 암살[* 《신당서》에 따르면 홀로 있을 때 자장(군진에 소속된 장교 중 소장급으로, 요즘으로 따지면 '''잘해야 중대장ㆍ대대장쯤 되는 지위이다.''') 학령전과 우연히 만나 참수당했다고 하며, 《통감》에 따르면 반란을 일으킨 바이르쿠를 완파하고 승리감에 취해 경비병없이 홀로 돌아가다가 바이르쿠의 패잔병 일부와 우연히 조우하여, 공격받아 전사하고 그 수급이 자장 학령전에게 보내졌다고 한다. 정말 이것이 '''[[측천무후]]와 대등한 위치에 서서 하북을 총공깽으로 몰아넣으며 유목민족 전체를 아우르던 위대한 가한의 죽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허무하다.]을 당함으로써(716) [[돌궐 제2제국]]은 심각한 혼란에 빠졌고, 바이르쿠ㆍ위구르ㆍ통라([[동라]])ㆍ[[습족|습]]ㆍ부쿠([[복골|복고]]) 등 돌궐에 정복되었던 5개 부족이 한꺼번에 당 제국에 귀부해오면서 북방 국경선이 크게 강화되었다. 이후 대처에서 미숙함을 보이면서 뒤를 이은 [[비가가한]](빌게 카간)과 [[궐특근]](퀼 테긴)에 의해 돌궐 제2제국이 상당한 군사력을 회복했지만 묵철가한의 전성기와 같은 압도적인 위용은 보여주지 못하게 되면서 현종은 상당히 여유있게 돌궐 정복전에 착수할 수 있었다. 물론 개원지치 시절엔 그래도 돌궐이 여전히 당 제국 못지않은 군사적인 강력함을 내뿜고 있었던 시기라서 기본적으로는 돌궐 수하의 부족들을 귀부시키고 돌궐을 선제공격하거나, 돌궐의 침공을 저지하는데 전력을 다하는 등 승리하고 패배하고를 반복하는 소모전이 반복되었다. 723년에는 돌궐과 화친했는데, 여기서 현종은 그 신하인 매록철을 매수했다. 비가가한이 734년에 암살당하면서[* 빌게 카간은 독살당하기 전 매록철을 죽이고, 붕어했다고 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돌궐 제2제국은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742년에 돌궐 제2제국에 내전이 발발하자 현종은 [[발실밀|바스밀]](발실밀), [[카를룩]](갈라록), [[위구르 제국|위구르]](회홀)를 적극적으로 초유하여 동맹으로 삼았고 그 다음엔 삭방절도사 [[왕충사]]가 이끄는 당군이 돌궐 근처에서 무력시위를 벌인 뒤 위구르, 카를룩, 바스밀 부족과 함께 돌궐을 공격했다. 결국 돌궐은 위구르에게 패배한 뒤, 당 제국의 절도사인 왕충사의 당군이 잔당을 마저 공격하면서 돌궐은 완전히 몰살당하게 되었고 당나라는 돌궐 정복에 성공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