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현종(당) (문단 편집) === [[퇴위]] 후 === 이후 당숙종의 연합군은 반란군을 공격하여 진압하고, 장안을 탈환하는데 성공하면서 757년 장안에 입성했다. 이후 당현종은 장안성의 별궁인 흥경궁에 은거했으며 [[안사의 난]]이 평정된 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며느리인 장 황후와 환관 이보국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현종을 강제로 감로전으로 유폐시켜 버리고 그의 부하인 [[고력사]]마저 유폐시켜버렸다. 현종은 그들의 처사에 분노했으나 아들인 당숙종이 병으로 않아 눕고 있었으며[* 특히 숙종은 아버지 현종의 병문안을 자주 갔지만 건강이 악화되어 병문안도 황녀들이 대신 갔을 정도로 병세가 심해졌다.] 현종 자신도 고령으로 인해 건강이 좋지 못했기에 대항할만한 힘이나 군대가 없었다.[* 현종도 정치력이 뛰어나고 나름 전쟁터에서 실전으로 단련된 군인이었는데, 이제는 너무 나이가 든 데다가 계속된 정치투쟁으로 이때 건강이 얼마나 악화되었던지 숙종의 선처로, 각지에서 바친 진상물로 만든 산해진미들 중에서 현종이 좋아하는 고기 요리를 해서 보내 주었지만 현종은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였다.] 그의 곁에는 이제 궁인들과 가끔가다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혈족들밖에 없었다. 결국 762년 5월 2일에 현종은 옥피리를 불고는[* 이는 현종이 악기를 잘 다루었고 취미로 악기 연주를 자주 했기 때문이었다.] 궁인들에게 목욕을 하고 싶다고 말하여 궁녀들이 목욕을 시켜주었고, 다 마쳤을때 갑자기 쓰러졌는데 그 다음날인 5월 3일 새벽 78세를 일기로 죽음을 맞이했다. 늙은 황제는 죽는 순간까지도 [[양귀비]]를 그리워했다고 전해지나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으로 보이는 게, [[안사의 난]] 진행 과정을 보면 '''별로 정치적 영향력을 잃은 것 같지 않은''' 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실제로 장안성 탈환 이후 [[안녹산]]에게 붙었던 군인들에 대한 처벌 내용을 보면 '''강경한 처벌을 주장하는 현종에게 숙종이 그들을 처벌하지 말아달라고 말하는 내용'''이 《[[자치통감]]》에 쓰여 있다. 물론 안사의 난 때문에 양귀비가 죽었으니 그랬을 수도 있지만. 결국 이런 강력한 현종의 영향력에 두려움을 품은 숙종 즉위파가 두 황제 사이를 갈라놓아 결국 현종의 최측근인 [[고력사]]를 비롯, 여러 부하들이 유폐되고 그 자신도 말년에는 흥경궁에서 태극궁으로 거처가 옮겨져 유폐에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가 붕어했다. 그리고, 현종 사후 13일 뒤에 아들 숙종도 붕어하면서 당 제국의 정국은 다시 한번 혼란에 빠지게 되었으며, 이는 제국의 몰락으로 이어지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