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호국전쟁 (문단 편집) === 멈추지 않는 반원 봉기 === 호국군은 위안스카이의 6개 조항에 단호한 답변을 보냈다. * 위안스카이는 일정한 시일 내에 퇴위해야 하며, 관용을 베풀어 사형은 면할 수 있으나 반드시 국외로 축출해야 한다. * 반역에 가담한 양탁, [[돤즈구이]] 등 13명을 처벌하여 천하의 본을 삼아야 한다. * 군주제 준비 경비 및 군비 약 6천만원은 위안스카이와 군주제의 수괴 13명의 재산을 몰수하여 배상하도록 한다. * 위안스카이의 자손 3대의 공민권을 박탈한다. * 위안스카이가 퇴위한 후 '임시약법'에 따라 리위안훙이 총통을 맡는다. * 국무원을 제외한 문무관들은 일률적으로 예전대로 근무해야 한다. 그러나 군대의 주둔지에 관하여서는 반드시 호국군 도독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 황제에서 물러나고도 총통 자리를 지키려는 위안스카이의 행태에 민심이 격앙되면서 오히려 반원 감정에 불이 붙었다. 4월 6일 광동독군 용제광이 혁명당원 주집신과 진보당 [[천중밍]], 서근의 압력에 광동성의 독립을 선포했다. 4월 12일 중화혁명당의 영향을 받은 하급장교들이 봉기하여 절강장군 주서를 축출하고 절강성의 독립을 선포했다. 제재에 반대하던 강소장군 펑궈장은 4월 16일 위안스카이에게 제제 취소를 건의하는 전보를 보내고 절강성과 상호불가침조약을 체결했다. 국회의원들과 각계 명사들은 다시 살아난 황제는 있어도 절개를 잃고 재기하는 총통은 없다면서 위안스카이의 하야를 요구했다. 4월 18일 호국군은 1호와 2호 선언을 발표, 위안스카이는 제제 이후 대총통 자격이 소멸되었기 때문에 부총통인 리위안훙이 계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4월 21일 위안스카이는 책임내각제를 선포했으나 4월 22일 쉬스창은 국무경에서 하야해버렸고 위안스카이는 돤치루이를 국무경에 임명했다. 위안스카이는 원중추를 난징에 파견해 펑궈장이 독립하지 않은 성들을 규합하여 위안스카이 옹호 무력시위를 하게 하도록 지시했으나 펑궈장은 평화회담 기간에 그러는 것은 좋지 않다며 난징에서 시국 회의를 열자고 제안했다. 위안스카이는 즉시 동의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