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노리우스 (문단 편집) === 통치 === 이런 막장 상황에서 [[만력제|그가 한 일은 '''없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즉위해서 환관들에게 휘둘렸다고는 하지만 커서도 개념이 없긴 마찬가지라 즉위 초기부터 자길 지켜주었던 장인이자 매형[* 테오도시우스 1세의 형인 대(大) 호노리우스는 두 딸만 남겨놓고 일찍 죽었는데, 테오도시우스 1세는 그 중 동생이던 세레나를 양녀로 맞이해서 당시 게르만족 출신 무장들 중에서는 비교적 신뢰할 만했다는 스틸리코에게 시집보냈다. 이후 스틸리코는 [[근친혼|세레나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두 딸을 차례로 테오도시우스 1세의 아들이었던 호노리우스에게 시집보냈다.]]]인 [[스틸리코]] 장군을 [[408년]]에 처형하고, 408년부터 [[410년]]까지 서고트의 대왕 [[알라리크]]가 [[로마]]를 포위하고 항복을 권유했는데도 자존심때문에 뻗대다가 결국 410년 로마가 관광당하는 꼴을 맞이해야 했다. 물론 자기는 그동안 황궁이 있었던 [[라벤나]]에 숨어있었는데, 여차하면 아드리아 해를 통해 동로마로 도망치려고 했다. [[난형난제|역시 그 형에 그 동생.]] 이후 알라리크가 병으로 어이없이 죽고 나서 로마 시 재건에 다소나마 힘을 쓰기도 했지만 여전히 통치에 관심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고, 그나마 활약했던 휘하 장수였던 [[콘스탄티우스 3세]]에게 누이 [[갈라 플라키디아]][* 알라리크의 처남이었던 [[아타울프]]와 결혼해서 자식을 두기도 했지만 둘 다 죽었다.]를 시집보내는 한편 공동 황제 자리까지 줘서 그에게 통치와 전쟁을 떠넘겼다. 이후 콘스탄티우스 3세가 급사하자[* 동로마와의 전쟁을 준비하던 중 급사했기 때문에 독살설도 있다.] 갈라 플라키디아와 그 자식들을 해치려 들었고, 이에 경악한 갈라 플라키디아는 삼촌을 쏙 빼닯은 아들 [[발렌티니아누스 3세]]와 딸 [[유스타 그라타 호노리아]]를 데리고 동로마로 도망쳤다.그 뒤 2년도 지나지 않아 이 집안의 [[유전병]] 비슷[* 테오도시우스 1세도 부종으로 붕어했다.]한 감이 있는 부종으로 붕어했다. [[요절/목록#s-2.5|향년 만 38세의 나이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