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류지 (문단 편집) == 가람(伽藍)배치와 건축물 == 호류지는 금당과 5층 [[목탑]]이 있는 서원(西院)과 유메도노([[몽전]])가 있는 동원(東院)으로 나뉘어 있다. 서원은 1탑 1금당식이며, 이는 전형적인 [[백제]]식 가람배치와는 좀 다르다. 먼저 지어졌던 백제양식가람(百濟樣伽藍)의 대표적인 예인 [[시텐노지]]는 정문과 탑, 금당이 일렬로 되어 있어 일본에서는 시텐노지식이라는 용어로 구별하고 있다. 호류지의 가람배치는 동전서탑(東殿西塔)이며, 현존하는 중국과 한국의 사례가 없어 과거에는 일본 고유의 식이라고 파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 고려~조선시대의 사찰 [[보제사]]([[연복사]])의 옛 터를 조사해보니 역시 동전서탑 배치였다. [[파일:attachment/Horyu-ji03.jpg|width=600]] 가람배치 호류지의 금당 건물은 정황이나 기록상 백제의 목조 건축 양식을 상당부분 받아들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호류지에 쓰인 난간의 人자형 대공, 하앙의 사용과 배치, 卍자형 난간 등의 특징적인 부분들은 백제나 삼국시대 유물과도 일치하는 점이다. 이 외에도 배흘림([[엔타시스]]) 양식 기둥 등 역시 한국 건축의 특징과 유사하다. 5층 목탑은 길게 빠진 처마의 우아함이 돋보이며, 이후 일본 [[목탑]]의 전형이 된다. 이 역시 인(人)자형 대공와 하앙이 사용되었다. 이 목탑의 구조 중심에는 거대한 심주가 있는데, [[히메지 성]]의 심주와는 다르게 탑을 지탱하고 있지는 않는다. 심주는 탑 꼭대기에 있는 금속 장식인 철반을 지지하기 위함이고, 탑은 다른 작은 기둥들과 공포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 또, 이 목탑은 사람이 올라갈 수는 없다. 높이는 31.5m이며, 위로 갈수록 조금씩 작아진다. 체감률이 크기 때문에 5층은 1층의 면적의 절반이다. 1층 처마 밑에 한층 낮게 덧댄 차양 부분은 그 양식을 봤을 때 금당에 있는 것보다 더 뒤의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파일:attachment/Horyuji.jpg|width=470]] 호류지의 금당과 목탑 뒤에는 강당이 있지만, 670년 이후에 재건되었던 강당은 또 벼락으로 인해 소실되었으며 지금의 것은 990년에 재건된 것이다. 앞에 있는 중문은 7세기 건물이다. 중문 안에는 양쪽에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이 서 있는데, 이는 8세기의 것이다. 중문도 금당과 양식이 유사한데, 구조가 유사하긴 하지만 똑같지는 않다. 대문 중앙에 기둥이 있는 것은 상당히 드문 모습이다. 호류지 금당과 목탑 등이 1300년 이상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 중에는 재료와 가공방법이 매우 좋았다는 점도 있다. 일본의 우수한 목재인 [[히노끼]]를 썼으며, 가공 방법 역시 재료를 낭비하더라도 목재가 최대한 변질되지 않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지금은 호류지의 [[단청]]이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과거에는 불교 건축물답게 단청이 있었던 듯하다. 기둥 등 나무표면은 주홍색을 사용하였으며, 난간에는 녹청색, 부재의 단면은 황토색, 벽은 백색, 개판[* 천장 등에 쓰이는 목판]은 호분색[* 흰색이지만, 천연물감이라 일반적인 백색보다 덜 희다]을 사용하였다. 또한 실내는 벽화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