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법전쟁 (문단 편집) == 호법정부의 약점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zurich.china-consulate.org/W020110809783193032269.jpg|width=100%]]}}}|| || 대원수 제복을 입은 쑨원 || 하지만 쑨원의 호법정부는 독자적인 군사력이 없으며 재정력이 취약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북양정부라고 훗날의 장제스나 더 훗날의 마오쩌둥 정권에 비하면 취약하긴 매한가지였지만 최소한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재정과 독자적인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쑨원은 어디까지나 자신을 초청한 탕지야오, 루룽팅 등의 군사력에 얹혀사는 처지였다. 즉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퇴출될 수 있었고 나중에 2차례나 그런 일을 겪게 된다. 자신들이 실세임을 아는 탕지야오, 루룽팅 등은 쑨원이 내각도 구성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일삼았으며 호법정부의 통제를 전혀 받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했다. 그리고 이들은 호법정부를 애초에 이용할 생각이라서 쑨원이 외치는 북벌과 호법운동에 대해선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쑨원이 푸젠 성에 대한 북벌을 준비하자 이를 방해하며 무산시키기도 했다. 호법정부가 거느린 병력은 기껏해야 쑨원의 친위부대 조금과 약간의 해군이 고작이었다. 게다가 호법정부는 고정된 수입이 없어서 오로지 기부금에 의존하였다. 즉 쑨원의 남방정부는 사실상의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호법군은 명목상 광서사단 4개 사단, 광동사단 10개 사단, 운남, 귀주사단 6개 사단 등 15만 정도의 병력을 갖추었으나 쑨원이 통제할 수 있는 병력은 앞서 설명한 듯이 거의 얼마 되지 않았고 이들은 [[전계군벌]] 탕지야오와 [[계계군벌]] 루룽팅의 휘하에 속해 있었다. 반면 북양군의 실질적인 우두머리인 돤치루이는 비록 [[북양군벌]] 내부가 [[직예군벌]], [[안휘군벌]], [[봉천군벌]] 등으로 갈라지긴 했어도 당시 중국에서 가장 강력한 병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북양군벌 전체를 합칠 경우 64만에 달하는 대병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돤치루이는 지나친 친일행위으로 인한 민심 이반과 북양군벌 내부의 파벌 갈등 및 관할해야 하는 전선이 너무 넓어 병력이 분산되어 있다는 약점이 있었고 이는 실제로 북양군벌 내부의 파벌 싸움이 심해지면서 그에게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