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자주의 (문단 편집) === 탈주술화 비판 === 탈주술화는 본래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셸링]]이 처음 사용한 용어였으나, 철학적 개념화는 막스 베버의 저서 『종교의 사회학』에서 이루어졌다. 막스 베버는 기존 로마 가톨릭 교의와 개신교의 교의를 비교함으로써 근대화를 설명하려고 하였다. 인간의 합리성과 최고 법칙 그 자체인 신 사이를 연결하여 신의 의도는 곧 인간의 종국적 행복과 관계된다고 하는 로마 가톨릭과는 반대로, 개신교는 신의 의도와 인간의 종국적 행복은 서로 무관하다는 기초하에 이루어진 교의였다. 또한 프리드리히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말처럼, 최고 법칙 자체를 부정하는 흐름도 또한 근대화의 새로운 흐름이라고 하였다. 막스 베버는 위와 두 가지와 같은 입장을 탈주술화라고 하였다. 그는 이러한 탈주술화가 바로 자본주의 근대화의 시작이라고 하였다. 자본주의 사회란, 그들 구성원이 실제 최고 법칙이 존재를 믿든, 믿지 않든, 최고 법칙이 인간의 행복, 복리증진, 피상적 선(善)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믿는 것이 주류가 되는 사회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엔베르 호자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이 실천주의적 존재론의 연장선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기존 자본주의 사회의 ‘탈주술’적 입장과는 다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분명 탈주술화는 봉건사회의 로마 가톨릭 교의가 여러 피상적인 것을 모조리 ‘신의 의도’라고 칭하면서, 비과학적이고 반합리적인 짐작을 한 것에 비해서 진보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으나, 탈주술화는 또 다른 의미에서 인간을 비천하게 만드는 노예 이데올로기의 시작이며, 이것은 인간 해방을 방해하는 자본가의 주요한 철학이라고 본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의 시기에서 자본가들은 “약자는 그 어떤 행위로도 해방될 수 없다. 그들 스스로의 해방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법칙’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무엇을 하든, 그들이 하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상대적인 행위일 뿐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변호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호는 자본주의의 고유한 특성인 주기적 공황, 즉 ‘사회적 예외 상태’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경제 혁명’의 논리를 분쇄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갖고 있는 문화전정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는 이러한 탈주술화를 비판하는 것은 물론이고 혁명의 정당성, 노동계급의 계급의식과 존재론적 의미에서의 존재(being) 사이의 연결성을 서로 긴밀하게 연결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에 따라 의식화가 되지 않은 집단을 군중(群衆, mass)이라 하고, 의식화가 된 집단을 인민(人民, people)이라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