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자주의 (문단 편집) === [[종속이론]] 비판 === [[호자]]는 [[마오주의]]의 제3세계 이론을 저발전의 논리에 기댄 [[쇼비니즘]]일 뿐이라고 비판하였으며, 이것에 대하여 [[계급투쟁]] 이론의 포기 및 [[제3세계]] 강대국으로 군림하려는 [[사회제국주의]]의 또다른 형태라고 비판하였다. 그는 또한 “종속지는 종속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이상, 영원히 독자적인 발전을 할 수 없다.”는 [[마오쩌둥]]의 견해에 반대하였는데, 그는 자본이 갖고 있는 경쟁적인 성격과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주기적인 공황성을 기반으로 하여 [[마오주의]]을 비판했다. 그는 그 어떤 종속된 자본이라고 하더라도 [[제국주의]] 국가는 [[자본주의]]가 내재한 공황의 성격 때문에 지속적인 세계 재분할 감행을 행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몇몇 ‘종속적’ 자본도 아이러니하게 기업 단위에서의 종속성을 탈피하게 될 수도 있음을 논하였다. 그러나 한 사회구성체의 자본이 자율성을 갖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산업 구조상 특정 제국주의 국가에 종속된 거래 루트를 확보하게 되는 수순을 밟게 되는데, 이것도 범적으로 종속이며, 신식민지라는 것이 엔베르 호자 사상의 요지이다. 따라서 [[호자]]의 주장 요지는 “[[제국주의]]의 지속적인 세계 재분할 과정 속에서 몇몇 종속적이었던 자본은 여러 잡다한 변수로 인해 독립성을 갖출 수도 있게 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래적인 성격에서의 종속성이 남아 있는 한(예를 들면 식량 주권 훼손, 수출-수입 무역 공간에서의 종속성 등), 그 국가는 신식민지라고 규정할 수 있다.”이다. 따라서 그는 마오쩌둥 사상에서 언급하는 ‘민족자본’이 존재한다고 해서 무조건 한 국가가 제국주의의 종속성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그는 심지어 후자의 종속성도 제국주의의 세계 재분할 과정으로부터 해소될 수 있으며, 여기서 각국의 일국 혁명은 제국주의 국가의 세계 재분할 가능성을 차단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제국주의 국가는 그 사회구성체의 자체적인 성격으로 인해 자본주의의 내재적 붕괴의 가능성을 계속 버리지 못하며, 따라서 이러한 붕괴를 막기 위해 세계 재분할을 시도하는데, 재분할을 시도할 수 있는 선택지가 일국 혁명으로 인해 점점 줄어들면 제국주의 국가는 과잉 생산의 늪에서 더더욱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뜻이었다. 또한 호자는 한 국가가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확보했다고 하더라도 군사, 문화, 정치 영역에서 제국주의 국가에 종속되어있다면 그것도 역시 범적인 의미에서 신식민지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제국주의는 한 고리에서 경제적 패권 행사가 불가능하게 되면 최후의 수단으로 군사, 문화, 정치에 관한 [[패권주의]]를 실행하며, 이 결과 종속국의 계급의식은 마비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 레닌은 마찬가지로 제국주의의 약한 고리에서 혁명적 분위기 조성을 얼마나 수행하느냐에 따라 혁명의 성공과 실패가 결정된다고 보았다. 반면 [[마오주의]]는 위와 같은 범적인 상황을 본질적 의미에서의 ‘종속’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마오쩌둥 사상에서 종속은 오로지 사회발전단계에서 자본주의로 나아갈 수 없게 하는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종속을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경제적 종속과 다르지 않으며, 동시에 자본의 종속성이 사라지면 거래 및 무역 루트의 종속성 또한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엔베르 호자는 마오쩌둥의 논리로 혁명을 이해한다면, 러시아 혁명도 또한 있을 수 없다고 하였으며, 동시에 “마오쩌둥 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충실한 것 같지만 동시에 이것은 제2인터내셔널의 수장들이 주장했던 교조주의와 유사하다. 마오쩌둥 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일부 모습, 그리고 카를 카우츠키의 교조주의, 마지막으로 중국의 고대 철학을 조잡하게 섞은 것에 불과하다. 그러한 결과로 마오쩌둥 사상은 좌경적으로도 보이고 우경적으로도 보이며,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모습으로도 보이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마오쩌둥 사상이 저발전의 논리에 기반한 결과로, 한 국가를 경제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자본가와 충분히 타협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1978년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은 자본가와 타협했다. 그는 이에 대해 “중화인민공화국의 자본주의 요소 부활은 주자파에 의한 대(對)마오주의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본래 마오쩌둥 사상이 갖고 있던 타협주의가 변함이 없이 발현된 것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각주] [[분류:스탈린주의]][[분류:알바니아의 정치]][[분류:인명으로 된 사상]]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