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주군 (문단 편집) == 상세 == || [[파일:kr_EdrxL88U8AAFG0m.jpg|width=100%]] || [[호주]]는 적도 이남 남태평양 지역에서는 상당한 군사 강국이다. 이는 태평양 지역에서는 호주 만한 국토나 인구, 경제력을 보유한 국가가 없다보니 이들의 군사력도 호주의 군사력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캐나다도 그렇다. 둘다 공통점인건 국토는 넓지만 10만 병력이 넘지 못하다는 것. 태평양 지역에서 제대로 된 전쟁이 일어난적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있었던 일본군의 침략 외엔 없을 정도로 몹시 평화로운 편이다. 그래도 호주 자체적으로도 군사력에 대한 투자도 매우 많고,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의 침략을 받은 경험도 있어 전진방어 [[독트린]] 개념으로 [[공군]]력과 [[해군]]력을 매우 건실하게 건설해 놓고 있다. 이렇듯 매우 평화롭다 보니 자국에서 전투를 수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신 영연방의 모국인 [[영국]]이 엮인 전쟁에는 전통적으로 거의 대부분 참여하곤 했다.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호주의 [[다윈]] 같은 몇몇 해안 도시를 폭격한(호주가 연합군이 되어서 오세아니아 여러 섬을 차지하던 일본을 미국, 영국과 함께 견제했기 때문) 것이 호주 건국 이후 첫 외국 군대 공격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때를 빼곤 대부분이 해외 전쟁 참전이다.[[http://gall.dcinside.com/list.php?id=australia&no=26525&page=1&bbs=|한국전쟁에도 참전했다.]] 이렇게 많은 전쟁에 참여하는 이유는 유럽의 국가들과 같이 정치적, 외교적 이권과 이해관계 때문. 한국 전쟁이나 베트남 전쟁에 호주가 참전한 것도 미국과의 가까워지던 관계의 영향이 크다. 원래 영국의 식민지였으나 갈수록 영국과는 멀어지고, 2차대전 태평양전쟁 당시 영국을 따라 일본과 전쟁을 수행했지만 독일, 이탈리아, 일본 3면전쟁을 동시에 수행하느라 힘이 빠진 영국이 일본에게 쪽도 못 쓰고, 사실상 태평양 전쟁을 미국이 거의 주도하면서, 호주의 정책도 영국을 벗어나서 '''[[친미]]'''로 향한다. 한국 전쟁에도 그런 이유로 참전하고,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전쟁 등에도 참전하였던 건, 미국과의 우방을 매우 중요시해서였다. --너무 평화롭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호주가 평화롭고 큰 사건, 사고가 없는건 사실이다. 뉴스에 코끼리나 [[코알라]], [[캥거루]]의 임신/출산이나 총리가 감기 걸렸다는 시시콜콜한 뉴스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연방]]의 일원으로 [[나치]] [[독일]]에 대항하여 [[뉴질랜드]]와 함께 주력 부대를 아프리카 전선에 파병하여 전투를 수행하였는데, 리비아의 토브룩에서 그 유명한 [[에르빈 롬멜]]을 두 번이나 물고 늘어지며 끝내 격퇴하며 고전하게 만든 게 호주군이었다. 또한 [[일본군]]의 공격에 대항하였는데 주력 정규여단들을 이미 아프리카에 파병하였기에 나중에 발발한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의 남진을 시간제 예비부대에 해당하는 민병대(민병이라곤 하지만 명령체계를 보나 장비를 보나 사실상의 예비군이다)를 태평양 전역에 투입하여 일본의 침공을 저지하였다. 이들 민병부대에 대해 호주 정부마저도 전투력에 우려를 표했지만 같이 싸운 미군이나 나중에 돌아온 호주 정규부대에 비해서도 떨어지지 않는 막강한 전투력을 보이면서 훌륭히 싸우기도 하였다. 호주군의 전투력은 미군이나 다른 연합군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 우수한 전력이었지만 정작 호주의 앞마당에서 벌어진 태평양 전쟁에서 호주군이 주축이 된 전투나 활약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이는 남서태평양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때문이었다. 그는 태평양에서의 전투의 주역을 미군과 자신이 맡기 위해 호주군에게 절대로 중요한 전투를 맡기지 않았고 미군이 이미 점령한 지역의 일본군 소탕과 같은 뒷처리용으로 사용하였다. 심지어 밀른만 전투와 같이 호주군이 독자적으로 수행한 전투에 대해서 낮게 평가하여 호주 국민들의 사기를 높이려 노력하던 호주군과 호주 정부의 원망을 사기도 하였다. 허나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그렇지 2차 대전 당시 길도 무엇도 없는 빽빽한 정글 속에서 일어난 [[코코다 트랙 전투]] 등 일본군에 맞서 싸운 사례를 찾아보면 대단하다. 호주군의 활약을 실제로 목격한 타국 군인들의 평가에 의하면 호주 군인들 개개인의 기량은 세계에서 5위 안에는 확실히 들 것이라고 한다. 뭔가 엄청난 훈련을 받는 것인지, 아니면 호주인들이 원래부터 [[캐나다]]인들처럼 전투민족인 것인지.. 평소에 농사와 사냥으로 단련된 핀란드인들과 캐나다인들이 엄청난 전공을 올렸듯이 평소 개척민에서부터 이어받아왔던 거친 생활이 전시상황에 적합한 모양이다. 특히 베트남 전쟁에서는 소수 파견에 전사상비 최고를 기록하였다. 호주군 SASR과 미군 MACV-SOG가 작전지가 겹쳐서 유혈사태까지 갈뻔한적이 있다하니 전투민족이라 말할수밖에 없다. 당시 [[MACV-SOG]]는 갈때까지 간 특수부대였고, 이들과 조우한 호주 [[SASR]]도 만만치 않았으니 이런 일화가 나올법 하다. 특수부대인 [[SASR]]은 영국 [[SAS(특수부대)|SAS]]와 맞먹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된다. 그리고 뉴질랜드 SAS인 NZSAS도 이와 비슷하다고 알려져 있다. [[베트남전]] 당시 500:1(그나마 전사가 아니라 전투에서 입은 부상으로 나중에 사망)이라는 전사자 교환비를 자랑하기도 했다. 그래봤자 전군 병력이 5만 명밖에 안 되므로 오세아니아를 벗어나면 명함을 내밀지 못한다. 싱가포르군이 70,000명 선이라는것을 생각하면 꽤나 적은 수치. 물론 싱가포르군은 [[징병제]]라 그 인구수에 비해 저런 병력을 뽑아낼수 있다. 그리고 SAS와 SASR 그리고 NZSAS는 서로 형제뻘로 교류도 많고 공동훈련도 많다고 한다. [[캐나다군]]처럼 묘하게 뛰어난 [[저격수]]들이 많다. WW2나 [[베트남전]]에서 자주 회자되듯이, 호주 출신 저격수가 뛰어난 이들이 많다고 한다. 역시 땅이 심하게 넓다보니 그런지도 모른다. 야생환경이 풍요롭다 보니 어릴 때부터 사냥을 즐겨서 그렇다고 한다. 보어인으로 구성된 남아프리카 출신 저격수들이 많았던 것도 그 탓이라고. 최장거리 저격 세계기록 보유자도 호주군에 있었다. 단, [[SASR]] 소속의 인물의 기록으로 기밀이 풀리기 전까지는 비공식 기록이었다. 이후 최장거리기록은 2009년 2475m에서 탈레반 간부를 저격한 영국의 Craig Harrison에 의해 갱신되었다..(출처:"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1270414/British-sniper-sets-new-sharpshooting-record-1-54-mile-double-Taliban-kill.html"). 2017년 기준으로 캐나다 [[JTF-2|제2합동임무부대]] 저격수의 3,450m기록이 최장거리 저격이 되어 한 동안 깨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ANZAC]]('''A'''ustralian and '''N'''ew '''Z'''ealand '''A'''rmy '''C'''orps. 이라 하여 호주와 [[뉴질랜드]] 연합군도 있다. 1차대전부터 전통적으로 같이 대규모 부대를 조직하여 많은 전투들을 참여 하였다. 지옥같은 [[갈리폴리 전투]] 등등 영연방군이 맞닥뜨릴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많은 전공을 세우며 치열하게 전투를 치뤄내었다. 호주와 뉴질랜드 모두 ANZAC데이라는 국경일은 한국의 [[현충일]]과 비슷한 위치에 있다. 예전에는 전쟁 중 전사한 인원들을 기렀지만, 현재는 공무중 사망한 모든 이들 즉 경찰과 소방관 포함한 모두를 기념한다. 재미있게도, '''[[가평]] 대대'''라고 한국의 지명이 붙은 부대가 있다. [[한국전쟁]] 당시 참전해서 [[중국군]]의 공세에 큰 피해를 입은 것을 기리기 위해 붙은 명칭으로, 이후에도 대략 80년대까지 매년 한국을 방문해 군악대가 사열식과 행사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가평에는 당시 전투를 기리는 위령비가 세워져 있고, 생존해 있는 호주군 참전용사들을 초청하여 기념 행사를 하기도 한다.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0090457&plink=OLDURL =|2003년 북한 마약선박인 봉수호를 나포하였다가 훈련용으로 F-111C가 격침한 바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