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주인 (문단 편집) == 역사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40deg, #012169 80%,#fff 80%, #fff 83%, #012169 83%)" '''{{{#fff 호주인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오세아니아의 민족)] [include(틀:대한민국의 주요 인종 및 재한 외국인)] [include(틀:호주 관련 문서)] ---- }}} || 호주 백인에 대해 죄수의 후손이라는 편견이 있는데, 실제로 영국인 죄수가 형량이 끝나거나 모범수로 사면을 받으면 호주에 정착해서 살게 되었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일반적인 이민자도 존재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죄수만이 아닌 죄수를 감시하고 식민지를 경영하는 군인, 행정관도 많이 건너왔기에 무조건 죄수의 후손이라는 이미지로 볼 수는 없다. 그렇게 말하면 [[시베리아]]는 대부분 유형지로 시작해 개척되었다. 더구나 이 시기 죄수는 지능범과 정치범이 많아 오히려 유럽인 평민에 비해 교육수준도 높았다. 게다가 중범죄자는 사형에 처해졌고 호주에 보내진 이들은 경범죄자였다. 미국과 호주는 초창기 유럽인 이민자들의 이주 목적이나 이민사 등이 달랐고, 이는 호주 문화와 미국 문화의 차이로 이어진다. 미국 역사 초창기 당시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민한 사람들 상당수가 본국에서 [[종교적 소수자]]로서 차별을 받았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호주의 경우 초창기에는 죄수 이민부터 시작해서 19세기 골드러시 이민자들이 이민의 중추를 이루었다. 이러한 연유에서 호주는 미국에 비하면 [[기독교 근본주의]]의 영향이 약한 편이다. [[캐나다]]와 [[뉴질랜드]] 역시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 18세기 말과 19세기에 호주와 뉴질랜드에 [[영국]]에서 온 이민자가 정착하면서 두 나라는 [[영어]]를 비롯한 [[영국/문화|영국 문화]]가 이식되었다. 두 나라는 19세기 유럽 북서부, 20세기에는 유럽 여타 지역에서 온 이민자 또한 흡수했다. 또 둘 다 아시아로부터 이민을 금지하고 백인 이민만을 허용하는 정책을 유지했다. > >20세기 후반기부터 인종차별이 철폐되고 다문화 이데올로기가 패권을 잡게 되었다. 이제 호주와 뉴질랜드의 이민자는 언어를 영어로 바꾸고 호주와 뉴질랜드의 뚜렷한 민족 문화와 역사적 전통을 수용하는 식으로 통합되었다. > >호주인과 [[뉴질랜드인]]은 자국의 식민 정착 역사와 더불어 호주-뉴질랜드 연합군([[ANZAC]])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 특히 [[갈리폴리 전투]]를 그들의 민족적, 역사적 이정표로 기념한다. 갈리폴리 전투가 일어났을 당시에는 호주와 뉴질랜드 인구가 극소수였고 오늘날 호주인의 조상 대다수는 아직 오세아니아가 아닌 유럽이나 아시아에 거주하고 있었으나 이 점은 여기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 > 민족 / 아자 가트, 알렉산더 야콥슨 저 전체 호주인 중에서 [[앵글로색슨]] - 켈틱[*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스]] 등 [[켈트]]인을 포함한 영국계를 일컫는다.] 인구는 58%에 달하며 이를 포함한 유럽계 호주인 인구는 76%에 달한다. 그 다음으로 많은 유럽계 그룹은 [[독일계 호주인|독일계]] 및 [[크로아티아계 호주인|크로아티아계]]이다. [[앵글로색슨]] 등 [[영국계 호주인|영국계]] 다음으로 많은 수의 [[독일계 호주인]]은 호주에 [[맥주]] 양조 기술을 전했다. 워낙 독일계는 호주 전 지역에 퍼져있어서 독일 혈통 호주인을 보는 건 어렵지 않다. 성이 버그[* 그러니까 Berg나 Burg. [[스티븐 스필버그]]의 성씨가 독일계 성씨로 독일계 미국 유대인이다.] 등으로 끝날 경우 독일계 혹은 유대계인데 유대계 중 [[폴란드]]식 성씨를 쓰는 경우도 많다.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의 [[마크 슈워처]](Mark Schwarzer) 골키퍼도 독일계이다. 2차대전 이전 호주에서는 [[이탈리아인]]과 [[그리스인]], [[포르투갈인]], [[튀르키예인]] 등 [[남유럽]] 쪽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앵글로색슨 계열이 아니라는 이유로 심각한 차별이 가해졌던 바 있다. 그러나 2차대전 당시 일본으로부터 심각한 위협을 받았던 호주에서 이민자들을 더 많이 받아서 인구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었고, 호주 총리 벤 치플리의 주도로 2차대전 직후 초토화되었던 유럽 각지에서 이민자들을 초청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게 되었다. 호주 백인 사회는 1930년대 말 기준 인구의 98% 가까이가 영국-아일랜드계였을 정도로 단순한 구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벤 치플리의 이민 초청 프로그램 시행 이후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다양한 배경의 유럽계 인구를 가지게 되었다. [[중국계 호주인|화교]][* 19세기 [[쿨리]]로 온 남부 [[광둥성]] 출신 [[중국인]]은 물론 요즘 건너온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중국계 싱가포르인]],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등 [[동남아시아]]의 중국계를 포함한다.], [[일본인]][* [[메이지 유신]] 전후로 북부로 건너온 농업이민의 후손이다.], [[한국인]], [[인도인]] 및 [[파키스탄인]] 등 [[남아시아]]인, [[레바논]]과 [[시리아]] 출신 [[아랍인]], 그리고 [[동남아시아인]][* 주로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출신이 많은 편이다.] 그 후손 및 원주민인 어보리진 등 유색인도 호주 경제와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백호주의 폐지 직전에는 호주 인구가 거의 다 백인이었으나, 결국 백호주의 정책이 폐지된 이래 아시아계 인구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호주 내 흑인은 원래 [[파푸아뉴기니]] 등 멜라네시아인이었지만 요즘 [[아프리카]] 대륙에서 오는 흑인 상당수는 [[남수단]] 출신 난민이다. 호주의 아프리카계 인구는 흑인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데, 남아공에서 [[아파르트헤이트]] 폐지 이후 흑인의 보복을 두려워한 남아공의 보어인 백인인 [[아프리카너]] 상당수가 호주로 이민하였다. 그리고 [[라틴아메리카]]계 호주인도 있는데 주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피해 도망친 [[칠레]] 출신 망명자와 역시 군부독재와 경제난을 피해 [[브라질]], [[아르헨티나]]에서 호주로 온 사람이다. 2021년 6월 30일 기준 [[대한민국|한국]]에 거주하는 호주인의 수는 7,463명으로 [[재한 외국인]] 중 21위다. 이 중에서 [[한국계 호주인]]이 4,252명이다.[[https://viewer.moj.go.kr/skin/doc_mobile.xhtml?rs=/result/bbs/227&fn=temp_1626768764004100|#]]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