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표기 (문단 편집) == 개요 == 고대 [[중국]]의 [[위(삼국시대)|위나라]] [[조조]]의 정예[[기병]]대. 조조의 군대 중 [[청주병]]과 더불어 명칭이 널리 알려졌다. [[호랑이|'''호'''랑이]]와 [[표범|'''표'''범]]같이 용맹하고 날랜 [[기병|'''기'''병]]부대란 뜻이다. 부대원은 '정예하고 용맹한' 병사들을 모아 조직하였고, 때로는 백인장 중 부대원을 모집하기도 했다.[* 위서 조순전 주석] 부대원 모집과정과 명칭, 지휘관의 출신 성분 등으로 인하여 일반적으로 조조의 정예기병대로 간주된다. 하지만 무장, 숫자, 전투 방법, 전장에서의 역할에 대해서는 전하는 바가 전혀 없다. 실제 역사상에서의 '호표기'에 대한 기술은 아주 조금으로. 정사(역사서)인 「삼국지위서 조인전」등에 그 존재가 전해진다. 부대 창립의 정확한 시점은 명확하지 않으나 [[원담]]이 장악한 남피를 포위할 당시 호표기가 동원되었으므로 적어도 204년 이전 시점에 창설되었다고 볼 수 있다.[* 위서 무제기, 위서 조순전] 정사에 따르면 호표기의 지휘관은 조조[* 위서 조순전 주석] 본인과 그의 일족인 [[조휴]][* 위서 조휴전], [[조진]][* 위서 조진전], [[조순(후한)|조순]][* 위서 조순전]이 역임했다. [[하후상]], [[조인]] 등 초기에 조조 휘하에서 기병을 이끌고 종군했다는 친족 인사의 기록들을 통해 이들을 호표기를 이끈 장수들 중 하나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이를 확정지을 사료적 근거는 없다. 확인되는 역대 지휘관 전원이 조씨라는 점을 들어 핵심 군사력인 기병을 친족 인사에게 일임한 것으로 보인다. 조조의 원정에 수차례 동행하여 전적을 남겼다고 한다. 원소의 잔당인 [[원담]]을 토벌하기 위한 남피 포위전 때, 적의 공격으로 장기전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이를 타파하여 원담을 베었다는 것은 호표기의 공적 중 하나다. 조조의 북방이민족 정벌에도 한 몫했으며 또 신야를 탈출하여 강릉을 향하는 유비군을 쫓아가 격파한 전적도 전해진다. 「위서 조휴전」에 따르면 조휴는 늘 정벌에 수행하며 호표기를 이끌고 숙위(宿衛, 군주를 호위하며 곁을 지킴)했기에 조조의 초기 원정 상당수에 종군했으리라 보인다. 하지만 사서상에서 정확히 확인되는 참전은 남피에서 원담을 포위했던 때의 기록뿐이다.[* 위서 조순전] 조순이 [[적벽대전]] 이후 병사하자 조조는 애석하게 여기며 후임 지휘관을 뽑지 않다가 좀처럼 적임자가 없자 이때 조조가 스스로 독을 맡았는데 자신의 직속으로 재배치된 것으로 보인다.[* 위서 조순전 주석] 조조 사후 스스로 해산했다는 기록이 있는 [[청주병]]과 달리 해산 시점이 언급된 사료가 없다. 오환 정벌 이후 조조는 [[오환족]]을 기병으로 폭넓게 활용한 것으로 보이나 오환족 이외의 기병 부대도 따로 있었다[* 위서 양습전에 한중 정벌 당시 오환족 왕이 종군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오환 왕과 별도의 기병 부대도 나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