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혼전 (문단 편집) == 역사 == 고려시대에는 국상이 나면 선덕전(宣德殿), 연영전(延英殿) 등 궁궐 내의 전각에 빈소를 마련하여 혼당(魂堂)으로 삼았다. 조선시대 최초의 혼전은 1396년에 설치된 [[신덕왕후]]의 혼전인데, 이 때는 따로 전호를 내리지 않고 그저 실록에는 "현비가 거처하던 인안전(仁安殿)에 혼전을 설치한다."라는 기록만 존재한다. 태조는 1398년 경복궁 내에 [[신의왕후]]의 혼전인 인소전(仁昭殿)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1408년 태조가 사망하자 태조의 신위도 인소전에 함께 봉안되었고, 이 때 전각 이름이 문소전이 되었다. 이어서 [[정종(조선)|정종]]과 [[정안왕후]]의 혼전인 인덕전(仁德殿)이 정종이 살던 인덕궁 내에, [[태종(조선)|태종]]과 [[원경왕후]]의 혼전인 광효전(廣孝殿)이 생겼는데, 당시에는 3년상이 끝난 뒤에도 신어가 계속해서 남아 종묘와는 별도로 운영되며 궁궐 내의 종묘 역할을 하였다. 세종 대에 들어가서야 "한 세대마다 이렇게 혼전이 생기면 나중에 가서는 궁궐이 혼전으로 꽉 차겠다."는 의견이 나와서 1432년, 광효전을 문소전으로 합하고 경복궁에 봉성전(奉誠殿)을 건립하여 [[원묘]]로서 관리하였다.[* 이 때 인덕전은 봉성전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정종은 정식 임금으로 인정되질 않았서였다.] 봉성전은 건립 한 달 후에 문소전(文昭殿)으로 이름을 바꾸고 원묘제를 이어가다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 내의 문소전이 불타 중단된다. 세종 대에 원묘제가 생긴 이후 혼전은 원묘제와는 별개로 운영되었는데, 문소전과 광효전처럼 3년상이 지난 후에도 놔두지 않고 3년상을 다 치르면 철거되어 종묘에 봉안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