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홍길동전 (문단 편집) ==== 자신이 서자였음에도 첩을 두었다? ==== 홍길동전의 서술을 보면 '처첩'이 아니라 두 부인, 즉 '이처'를 두었다고 나와 있다. 처와 첩은 지위 및 그것이 갖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일단 작중 내용에 따를 때, 홍길동이 세운 [[율도국]]에서 '''서얼을 차별하는 의식이나 관념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본을 보면, 홍길동은 백 소저와 조 소저 두 아내를 두었는데 그 사이에서 3남 2녀를 낳았고 그 중 장남을 세자로 삼고 나머지는 모두 대군으로 삼았으니 결코 자식들을 차별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즉 홍길동전은 어디까지나 첩의 자식이 차별받는 서얼 제도를 비판하면서 계급제도의 모순을 통찰한 작품이다. '처첩'을 두고 자식에게 차별 대우를 했다면 작품의 주제 의식이 흐트러지겠지만, 여러 여인들을 거두더라도 서로 동등하게 대우했다면 이 문제는 해결된다. 오히려 두 부인과 그 자식들을 동등하게 대우함으로서 차별철폐라는 주제의식을 완성하는 장치로 파악 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