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홍길동전 (문단 편집) == 상세 == 허균의 문집에는 홍길동전에 대한 언급이 없기에, 허균이 저자라는 것에 대한 논란이 있으며, 작자 [[미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허균이 지었다는 근거는 허균과 동시대의 인물이자 허균의 제자인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문집 《택당집(澤堂集)》에서 허균이 저술하였다고 서술되어 있는 것이다. 아래 내용 참조. >세상에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수호전(水滸傳)》을 지은 사람의 집안이 3대(代) 동안 농아(聾啞)가 되어 그 응보(應報)를 받았는데, 그 이유는 도적들이 바로 그 책을 높이 떠받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허균(許筠)과 박엽(朴燁) 등은 그 책을 너무도 좋아한 나머지 적장(賊將)의 별명을 하나씩 차지하고서 서로 그 이름을 부르며 장난을 쳤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허균은 또 《수호전》을 본떠서 《홍길동전(洪吉童傳)》을 짓기까지 하였는데, 그의 무리인 서양갑(徐羊甲)과 심우영(沈友英) 등이 소설 속의 행동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다가 한 마을이 쑥밭으로 변하였고, 허균 자신도 반란을 도모하다가 복주(伏誅)되기에 이르렀으니, 이것은 농아보다도 더 심한 응보를 받은 것이라고 하겠다. > ---- > 《택당선생 별집》(澤堂先生 別集) 제15권 〈잡저〉 ‘산록’ [[https://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dataId=ITKC_BT_0326A_0320_010_0030|#]] 택당 이식 이후 심재(沈梓, 1624년 - 1693년)의 《송천필담(松泉筆譚)》과 홍한주(洪翰周, 1798년 - 1868년)의 《지수점필(智水拈筆)》은 이식의 <택당집>을 인용해서 "허균이 홍길동전의 저자"라고 서술하고 있다. 택당 이식은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었다고 말하면서 [[수호전]]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는데 허균은 홍길동전을 저서에서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저서 <성소부부고>와 <한정록>에서 직접 [[수호전]]을 언급한 적이 있다. >내가 희가(戲家)의 소설 수십 종을 얻어 읽어보니, 《삼국지연의(三國誌演義)》와 《수당지전(隋唐志傳)》을 제외하고, 그 밖에 《양한지(兩漢志)》는 앞뒤가 맞지 않고, 《제위지(齊魏志)》는 옹졸하며, 《잔당오대지연의(殘唐五代志演義)》는 추솔(粗率)하고, 《송태조용호풍운회(宋太祖龍虎風雲會)》는 소략하며, 《수호전(水滸傳)》은 간사한 속임수에 기교를 부렸다. 이것들은 모두가 독자를 교훈하기에 충분하지 못한 것들인데 한 사람의 솜씨에서 저술이 되었으니 나관중(羅貫中)의 자손이 3대를 벙어리로 살아간 것이 당연한 일이다.\ > >《서유기(西遊記)》라는 책이 있는데, 종번(宗藩)에서 나왔다고 하는 것으로 이는 곧 현장(玄奘)의 취경기(取經記)를 가지고 그것을 부연한 것이다. > >여기에 대한 사실은 《석보(釋譜)》와 《신승전(神僧傳)》에 대강 나타나 있으되 반신 반의(半信半疑)의 사이에 속한다. 지금 보건대 그 책은 독특하게 불가(佛家)의 수련(修煉)하는 의미를 가설(假說)하였다. 후왕(猴王)의 좌선(坐禪)은 곧 몸을 단련하는 것이며, 노조궁(老祖宮)에서 단(丹)을 훔친 것은 곧 서주(黍珠)를 삼킨 것이며, 대요천궁(大鬧天宮)은 곧 연념(煉念)이며, 법사(法師)를 모시고 서역(西域)에 가는 것은 곧 하거(河車)를 운반(運搬)하는 것이며, 화염산 홍해(火炎山紅孩)는 곧 화후(火候)이며, 흑수(黑水)가 천하(天河)에 통한다는 것은 곧 퇴부후(退符候)이며, 서쪽에서 동쪽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곧 서호(西虎)가 동룡(東龍)과 교제하는 것이며, 하루에 서천(西天) 10만 리를 돌아온다는 것은 곧 온 하늘의 빽빽한 별을 일시에 셈한다는 것이다. 이는 비록 지리하고 막연하며 그 말들이 올바른 말이 아니지만 종종 다 단결(丹訣)을 가탁하여 이야기하였으므로 진정 내버릴 수는 없다. 나는 특별히 이 책을 간직하고서 진체(眞諦)를 수련하는 여가에 피곤하면 이것으로써 수마(睡魔)를 몰아낼 생각이다. >---- >ㅡ 《성소부부고》 제13권 서유록 발(西遊錄跋) [[https://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dataId=ITKC_BT_0292A_0140_010_0170|#]] >"전기(傳奇)로는 《수호전(水滸傳)》ㆍ《금병매(金甁梅)》 등이 일전(逸典)이 될 수 있으니, 이를 익히지 못한 자는 보면옹장(保面甕腸 식견이 좁은 것)에 지나지 않을 뿐, 음도(飮徒)가 될 수 없다." >---- >ㅡ 《한정록》 제18권 상정(觴政) [[https://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dataId=ITKC_BT_0292A_0460_000_0010|#]] 여기서 허균은 <성소부부고>에서 "<수호전>을 '사람을 간사하게 속이고 교활하게 권모술수를 부렸다.'고 하여 교훈적이지 못한 소설로 평한 반면, <서유기>는 신선의 연단술을 빌려 말을 세워기에 없애 버릴 수 없다"고 말하면서 서유기를 더 높이 평가했지만 다른 저서 <한정록>에서 원굉도의 말을 인용해서 "<수호전>을 익히지 못한 자는 식견이 좁아서 술 마시는 무리가 될 수 없다."라고 다르게 평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출처1 이종호 지음, 조선의 문인이 걸어온 길 241쪽 (2004)] 홍길동전의 이본의 내용은 허균이 지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원본이 전해져 오지 않고 있다. 자세한 것은 후술. 창작 당시의 원본은 아직 발견되지 못했고, 후대에 간행된 이본(異本)들만이 전해져온다. 크게 보면 서울에서 간행된 경판본 계열과, 전주에서 간행된 완판본('완'산주([[전주]])에서 인쇄된 판본) 계열, 기타 필사본 계열들로 나뉘어진다. 아래 30장 경판본이 홍길동전의 전체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홍길동전 [[https://ko.wikisource.org/wiki/%ED%99%8D%EA%B8%B8%EB%8F%99%EC%A0%84_30%EC%9E%A5_%EA%B2%BD%ED%8C%90%EB%B3%B8|30장 경판본(京板本)]] * 홍길동전 [[https://ko.wikisource.org/wiki/%ED%99%8D%EA%B8%B8%EB%8F%99%EC%A0%84_36%EC%9E%A5_%EC%99%84%ED%8C%90%EB%B3%B8|36장 완판본(完板本)]] 주인공 홍길동은 실제 도적이었던 [[홍길동#s-2|홍길동]](洪吉同)을 모델로 삼았다. 하지만 홍길동전의 홍길동은 洪吉童으로 한자는 다르다. 7차 교육과정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나온 작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