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홍길동전 (문단 편집) == 기타 == * 이 소설로 인해 '홍길동'이라는 이름은 매우 유명해져서, 현대 한국에선 마치 미국의 [[John Doe]]와 같은 '대표적인 이름' 위치에 올라 현대에 이르러서는 가장 다양한 종류의 문서를 작성한 사람이 되었다. 또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지방 자치 단체에서 홍길동의 고향이 어디냐를 문제로 다툰 일도 있다고 한다. * 소설 속 홍길동이 조직한 [[활빈당]]은 훗날 동명의 조선 말 의병운동 단체의 이름으로 쓰이게 된다. *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기가 [[세종(조선)|세종]] 때이기에 이를 근거로 세종이 그다지 [[명군]]이 아니었다는 떡밥이 뿌려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소설에서 세종을 딱히 암군으로 묘사하고 있진 않으며 역사적 사실과는 관계없이, 당시로서는 오래된 임금 중 널리 알려진 왕의 이름을 끌어온 것 뿐이다. 애초에 저자가 세종에게 반감을 가졌다고 볼 수 없는 것이 소설의 첫머리를 보면 세종 15년부터 "사방의 일이 업고 도젹이 업스며 시화연풍하여 나라이 태평하더라."(현대식 철자법 : "사방에 일이 없고 도적이 없으며 시화연풍하여 나라가 태평하더라")고 나와 있는데 이를 보면 세종 치세는 오히려 평안한 시대로 묘사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오히려 저자가 세종의 이미지를 역이용했다는 해석도 있다. 즉, 성군인 세종의 치세 때도 적서차별과 같은 사회의 폐단은 존재했으며 따라서 극복해야 할 존재임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시기를 따져보자면, 완판본에서 나와있듯이 세종 15년에 아버지가 동침해 애를 가졌으니 실제 홍길동의 출생은 10개월 뒤인 세종 16년([[1434년]])일테고, 11살에 집을 뛰쳐 나왔으니 세종 27년([[1445년]])이다. 이후 천하를 주유하다 도적단의 두목이 되어 활빈당을 세웠는데 도적단의 두목이 되려면 아무리 못해도 15살은 넘었을 테니 1450년 이후일 것이다. 세종의 재위 기간이 딱 1450년까지니까 소설 속 홍길동이 실질적으로 활약한 시기는 세종대가 아닌 대략 [[문종(조선)|문종]] 이후 [[단종(조선)|단종]], [[세조(조선)|세조]] 치세일 것으로 추정된다. * 사회주의적 계급투쟁 요소 덕분에 [[북한]]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고 무장투쟁기 [[김일성]]의 신격화에도 축지법, 둔갑술 등 많은 요소들이 홍길동전으로부터 차용되기도 하였다. [[소련]]을 포함한 [[동구권]]에서는 번역서를 통해 홍길동전을 접한 사람들이 많았고 80년대에는 홍길동전을 소재로 한 오락 영화가 북한에서 수입되어 제법 인기를 얻기도 했다. * 홍길동전의 '호부호형'에 대한 오래된 꽁트가 있다. 홍 판서가 홍길동에게 호부호형을 허락한다고 말하자 홍길동은 울먹거리며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데 호부호형을 허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라고 말한다. 이에 홍판서가 답답해하며 '그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게 하고, 형을 형이라 부를 수 있도록 허락한다.'라고 말하자 홍길동은 여전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게 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게 하면 무합니까. 호부호형을 못하는데......'라고 말한다는 바보 개그. * 개그콘서트 파일럿 당시 홍길동전이라는 코너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데 호부호형을 허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라고 하였다가 여러 대화끝에 결국 이해하고 어머니에게 "아버지께서 호부호형을 허락했습니다."라고 말하자 어머니도 똑같이 말하며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으로 나왔다. * "빨간 길에 떨어진 동전의 이름은?"이란 수수께끼의 정답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