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홍길동전 (문단 편집) === 시대를 꿰뚫는 날카로운 비판을 담은 오락 소설 === 홍길동전에 대한 비판들은 전부 근대 이후의 가치관을 기준에 두고 있다. 유럽에서조차 일부일처제는 기독교를 통해서 받아들여지는데 수백년이나 걸렸고, 일부 이슬람교 국가에서는 아직도 일부다처제를 허용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일반적인 가치관으로 받아들여지는데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16세기에 동양의 조선에서 나온 소설이 이 모든걸 동시에 생각해 내지 못했다고 비판하는건 말이 안 된다. 홍길동전에서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습은 '''동양 철학''' 전반의 한계이지, 허균이 주장했던 온건한 신분제 개혁과 양립 불가능한 소재들도 아니다. 즉, 홍길동전은 수백년 전의 대중 소설에서 계급 사상의 모순을 '''통찰하고 이를 퍼트린''' 비판 능력으로 고평가를 받는 것이다. 물론, 인본주의를 기반으로 엄청나게 진보했던 서구의 사회 철학에 비할 작품은 아닐 수 있다. [[토머스 홉스]]의 사회 계약론이 담긴 [[리바이어던]]은 1650년대에 출판되었는데, 홍길동전은 학술서가 아닌 대중 소설이니만큼 단순비교는 불가능하지만, 천한 존재가 왕이 될 수 있다는 마무리가 있었다는 점에서 당대 동양 사회에서는 쉽사리 떠올려선 안 될 개념을 대중 소설로서 읽히게 만들었다는 의의는 분명히 낮게 평가할 수 없다. 단 유교에서 불교나 기독교 같은 평등 사상은 아니지만 폭군은 결국 역성혁명을 맞아 무너지고, 천한 사람도 순임금이 될 수 있다고는 등 충분히 유교적 가치관에 맞는 소설이다. 즉 유교적 이상주의를 바탕으로 한 장르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이다. 즉, 홍길동전의 한계는 동양 사회의 사상적인 한계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심지어, 현대 대한민국에서도 권위주의에 찌든 사람들은 홍길동전의 주제를 정치적으로 곡해하는 경우가 부지기수. 결국 홍길동전이 당대 조선 사회를 기준으로 상당한 파격적인 메시지를 던졌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홍길동 같은 인재가 사회 제도적으로 차별받았던 계기, 즉 '호부호형'이 자유롭게 허락되는 세상이 나타나는데 얼마나 많은 세월이 걸렸는지를 생각해보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