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홍명보호 (문단 편집) == 선임과정 ==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이후 [[허정무호]]의 뒤를 이어 출범한 [[조광래호]]는 결국 [[레바논 쇼크]]와 [[삿포로 참사]]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침몰한다. 그러나 [[조광래]] 감독의 전격 해임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일단 저지르고 보는 [[대한축구협회]]의 [[병맛]] 행정에 불과했다. 후임자 인선에 대해서는 전혀 대비가 없어 우왕좌왕하다 결국 당시 [[대한축구협회]] 회장 [[조중연]]은 개인 연줄로 [[전북 현대 모터스]]의 [[최강희(축구인)|최강희]] 감독을 설득하여 대표팀 감독 자리에 앉힌다. 조중연과 최강희는 사제지간으로, 최강희 감독은 계속 거절했으나, 조중연이 개인적으로 만나 같이 [[소주]]를 마시면서 간청했다고 한다.[* 상하 위계질서가 엄격하기로 유명한 대한민국 체육계에서 이것이 과연 간청이었을지, 그 간청을 버텨낼 사람이 있을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결국 최강희 감독은 국가대표 감독직을 수락했지만, "난 무조건 예선까지만 한다. 본선 감독은 따로 찾아야 할 것."이라고 폭탄선언을 한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는 성공했고, 이후 축구협회는 [[홍명보]], [[김호곤]], [[셰놀 귀네슈]]와 [[마르셀로 비엘사]]로 추정되는 4인을 본선 최종 후보 운운하며 [[언론플레이]]를 시도했으나, 구체적인 접촉은 하지 않았다. 홍명보와 김호곤은 국대 감독을 맡기에는 성과가 부족하고, 외국인 감독들은 후술하겠지만 재정 압박으로 선임이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을 고려해 볼 때, 아마 이 언플의 목적은 홍명보를 감독으로 앉히기 위함이 아니라 [[최강희(축구인)|최강희]] 감독 연임이 진짜 목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강희 감독은 처음 공언한 것처럼 월드컵 본선 진출 시키자마자 스스로 물러났다. 만약 호성적과 좋은 경기력으로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본선에 진출했다면 축협에서는 찬양성 언플과 간청(?)으로 본선까지 맡기려 했겠으나, 당시 최강희호의 경기력도 팬들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여 여론이 안 좋아서 설사 축협이 유임을 시키고 싶어도 불가능한 분위기였다.[* 그래서 아시아 예선 마지막 3연전을 [[개판]]으로 치른 게 오죽하면 최강희가 일부러 그랬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이다. 물론 결론을 말하자면 일부러 그런 건 절대 아니며, 오히려 최강희 감독은 [[조광래]] 때문에 축구인 인생을 망칠 뻔 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a_match&ctg=news&mod=read&office_id=452&article_id=0000000183|관련 기사]] 참고.] 스포츠 칼럼니스트인 [[이영미(기자)|이영미]] 기자의 단독 기사에서 홍명보의 감독 내정 이야기가 나왔고 갑론을박이 오갔지만, 결국 6월 24일 홍명보의 월드컵 본선 감독 내정이 공표되었다. 홍명보 감독의 선임에 대해서는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고, 현실적으로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엉망진창이 된 대표팀을 다 잡고 월드컵에서 성과를 내는 일은 홍명보가 아니라 누가 와도 불가능한 임무로 보이기에 이런저런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당장 [[딕 아드보카트]] 감독의 사례를 떠올려 보자.[* 그래도 아드보카트는 원정 첫승, [[지네딘 지단]]이 있던 [[프랑스]]와 비기고 [[승점]]을 무려 4점이나 따냈다. 절대 [[실패]]라고 볼 수는 없다.] 결국 축구협회는 기어이 홍명보 감독을 선임했다. 다만, 축구협회의 재정 문제로 외국인 감독 선임을 반대하는 시각이 존재하기는 했다. 협회의 주요 수입 중 하나였던 [[토토]] 수익금이 정부 정책 변화로 반토막이 나면서[* 그 동안 축협에 주던 해외축구토토 수익금을 비인기 종목으로 돌려버렸다.] 안 그래도 예산이 빡빡해진 상황에서 명장 선임은 불가능한 일이다. 당장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만 해도 연봉이 250만 달러다. 사실 [[거스 히딩크]] 감독조차 커리어를 망치고 실업자 신세일 때 헐값에 낚아채온 것일 뿐, 대한축구협회 예산으로 지불 가능한 연봉은 100만 달러 정도가 한계다. 예산을 무시하고 영입했을 경우 다른 부분에서 당겨쓸 수 밖에 없는데, 그만한 자금을 뽑아낼 수 있는 건 유소년 축구 예산 정도다. 다시 말해 당장 1년 후를 위해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를 모두 내다버리는 선택이므로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계약기간은 2년으로, 계약기간만 따지면 2013년 6월부터 2015년 6월까지, 즉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을 거쳐서 [[2015 AFC 아시안컵 호주]]까지 맡게 될 예정이었다. 이 계약기간은 홍명보 자신이 요청한 것이라 밝혔다. 축구협회는 장기 계약을 제안했지만, 장기 계약을 하면 자신이 나태해질 것 같아서 그랬다고 한다. 그리고 축협은 브라질 월드컵 [[홍명보호/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알제리전|알제리전]]의 악몽을 보고도 바로 모가지 날리던 기존 행보와는 다르게 홍명보의 계약 기간을 끝까지 지키고자 했다. 똑같이 현역 시절 전설적인 축구선수였으며,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무쌍난무를 보여줬던 [[차범근]] 감독이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차범근호/1998 FIFA 월드컵 프랑스/네덜란드전|네덜란드에게 5대0으로 대패]]하고 바로 [[해임]]되었던 것과는 매우 다른 모습인데, 차붐은 현역 은퇴 이후에는 한국축구계 기준으로 약간 아웃사이더끼가 있었던 레전드였지만, 홍명보는 한국에서 모든 엘리트 코스를 다 거치고 올라온 축협과 한국축구의 적장자라서 감싸고 돌았던 것으로 보인다. 감독으로서 홍명보가 내건 모토는 'One Spirit, One Team, One Goal'. 역대 성적을 보면 히딩크 이후 역대 한국 국대 감독 중 최악의 성적을 거뒀다. 이는 졸장이라 미친 듯이 까이던 [[조 본프레레]], 경기장에서 야유가 터져나오던 [[핌 베어벡]] 등보다도 못하고, [[허정무]]나 [[조광래]], [[최강희(축구인)|최강희]]는 홍명보와 비교하면 희대의 명장으로 보일 정도이다. 허정무 이후의 국대 감독들이 팀의 장점을 살리기는 커녕 이해할 수 없는 선수 기용 및 포지션 파괴, 엉성한 전술[* 인터넷 시대로 접어들면서 스포츠 관련 커뮤니티에서 무전술이라는 말을 쓰지만 엉성한 전술이라면 몰라도 무전술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등을 일삼으며 국대를 퇴보시킨 영향이 없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그나마 [[조광래호]]의 경우에는 월드컵이 3년 남은 만큼 여러 가지 전술적인 시도를 하다가 삿포로와 레바논에서의 대참사로 인한 여론 악화로 인해 [[경질]]된 사례고, [[최강희호]]는 월드컵 본선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아시아예선 통과만을 목표로 삼아서 해외파의 항명 파동에도 불구하고 목표 달성 자체에는 [[성공]]했다. 반면 홍명보호는 단기간에 맞춰서 당장 뽑아 갈 수 있는 최정예 멤버를 뽑은 것도 아니고, 전술적 시도 자체도 [[박주영]] 같이 소속팀에서 매우 부진한 해외파들을 기용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 것이 분명해진 상황에서 퇴보 운운하는 것은 전임 감독 둘에게 실례에 가까운 행위라고까지 볼 수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나쁜 성적인 것은 사실이다. 기본적으로는 전술적인 시도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며, 경기 감각이 없다시피한 박주영을 강한 의지로 무리하게 기용했으며 이미 은퇴를 선언한 [[박지성]]을 복귀시키기 위한 언플을 여러차례 시도했다. 월드컵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선수기용 및 전술에 대한 기사보다도 [[박주영]], [[박지성]]에 대한 기사가 훨씬 더 많았던 상황은 결코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선수 시절의 업적, 특히 월드컵 4강의 주역이라는 점으로 인한 호의적인 시선이 매우 많이 존재했었기 때문에, 홍명보에 대한 비판 자체를 일절 거부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이 존재했다.[* 사실 무조건적으로 홍명보를 옹호하는 빠들도 많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고정 축구팬이라기보다는 월드컵이나 올림픽에만 축구를 보는 "조건부 축구팬"이란 한국 축구판의 특성도 작용했다. [[정가은|이런 사람들의 경우 평상시 대표팀이나 선수들에 관심이 없다가 월드컵 때만 관심을 갖는데]], 홍명보가 [[듣보잡]]인 (어디까지나 이들 시점에서) [[2013 EAFF 동아시안컵]]에서 부진한 것보다는 [[2012 런던 올림픽/축구(남자)|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이라는 대업적을 거둔 것, 그리고 과거 선수로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때 팀을 잘 이끈 것에만 집중을 한 것. 게다가 이런 조건부 축구팬들은 올림픽과 월드컵 축구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잘 모르기 때문에 "큰 대회에서 잘하면 됐지!"라는 심정으로 응원하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2014년 월드컵 때 변명의 여지가 없는 부진을 하며 이들도 다 등을 돌렸다.] 언론 또한 다른 사람이었다면 비난에 가까운 기사들이 쏟아져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시점인데도 불구하고, 매우 호의적이고 희망적인 관측만을 반복했다. 쉽게 말하면 2002년 월드컵 이후 역대 최악의 전력을 가진 잉여 국대와 국대 잉여화의 장본인을 상대로 과분한 옹호를 해줬다. 그러나 아무리 합리화를 하고 격려를 해도 월드컵이 코앞에 다가온 시점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결국 6월 24일 [[SBS 8 뉴스]]에서 아시아 국가들의 무승 이유 중 사령탑의 고집 때문이라고까지 불리게 된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박주영]]과 [[정성룡]]의 명예도 최악으로 떨어졌으며, 현재는 박주영은 어느 정도 명예는 회복하는 듯 하지만 정성룡은 여전히 비난을 받고 있는 상태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