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홍사익 (문단 편집) === [[3.1 운동]] === [[3.1 운동]]으로 [[일본]]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동포들의 움직임을 보고, 아직 [[일본군]]에 남아 있던 [[김경천|김광서]](1년 선배), [[지청천]](동기), [[이종혁(독립운동가)]](1년 후배) 등이 잇달아 탈영하여 [[독립군]]에 합류한다. 하지만 홍사익은 여전히 일본군에 남아 있었는데, 훗날 홍사익 본인이 육사 후배인 이형석[* 육사 44기로, 홍사익보다 육사 16년 후배이다. 병으로 1년 휴학하여 45기인 이우와 함께 졸업했다.]에게 한 말에 따르면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것이 걸려서 군인을 그만두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다. 동료들과 함께 하지 못한 것이 걸렸는지, 대신 조선인 출신 장교들의 친목모임을 통해 일본군을 탈영한 동료 조선인 장교들이 두고 간 가족들의 생활을 돌보아 주었다는 이야기는 있다. 홍사익은 수 년간 이 모임에서 간사(총무)를 맡았다. 일본군 내 조선인의 입지가 약화된다고 해서 탈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있는 모양인데, 이는 후술할 [[태평양전쟁]] 시기에 한 말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1919년경에 일본군에 속한 조선인은 황족인 [[영친왕]] 이은을 제외하면 [[대한제국]] 말기에 유학한 사관생도 출신 장교 30여 명에 지나지 않아 입지가 약화되고 자시고 할 규모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시기 일본군에서는 조국을 위해 행동하는 조선인 장교들을 일종의 [[지사#s-2|지사]]로 보는 분위기가 있어서 몇몇 장교들이 탈영했다고 나머지 잔류파인 조선인 장교들을 탄압하지도 않았다. [[지청천]]이 탈영했을 때 동기인 홍사익이나 [[이응준]]은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았고 1기수 아래 [[김석원]]은 예편 후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가 잡혀 형을 살고, 심지어 늑막염으로 산송장이 되어 돌아온 자신의 동기 이종혁을 자주 찾아보고 돈까지 구해주며 적극적으로 건네주기까지 했는데도 연대장이 "그러다 앞길 막힐 수도 있다"고 가볍게 타이르는 게 전부였다. 대한제국군 출신으로 일본군에 편입되었다가 일본군을 그만두고 독립투쟁에 나선 이갑이 아직 일본군에 있던 [[사위]] [[이응준]]에게 [[권총]]을 구해달라고 연락해 이응준이 자신의 권총을 보내주었다가 들켰는데, 이때는 상부에서 단순 도난으로 무마시켜 주었다. 일본군에서 권총은 사비로 알아서 구매하는 개인 재산이었기 때문에 보급품 횡령같은 문제까진 아니었던 덕도 보았겠지만. 이에 대해 큰 뜻을 품은 지사들을 보면 일단 한 수 접고 존중해 주던 [[메이지 시대]]의 풍습이 당시 일본 사회에 아직 뿌리박혀 있었기 때문에 일본인 상급자들이 조선인 장교들의 이런 소소한 군기 문란 행위를 알고도 덮어주지 않았겠냐는 시각도 있다. 메이지 정부의 수립 과정에서 이런저런 사정으로 중앙 정계에 안착하지 못한 유신지사들은[* 토막 전열에 합류한 타이밍도 어정쩡했고 사쓰마, 조슈의 등쌀에 시달리다가 [[이타가키 다이스케]] 같은 소수를 제외하곤 혁명의 과실도 별로 누리지 못한 [[도사]] 번 출신 지사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몰락한 구 막부 사족들과 함께 민간으로 파고들어가 좌익과 극우를 막론하고 근대 일본 비주류 정치세력의 시조가 되었는데, 비록 사회주의, 파시즘 같은 근대 사상의 대두와 함께 방향은 갈라졌지만 메이지 시절만 하더라도 극우 사상가가 정치범으로 쫒기는 좌익 운동가의 가족을 돌보아 준다든지 하는 식으로 이념을 초월하는 지사 문화의 영향력[* 우리도 해방 직후 미군정 시기라던가 제1공화국 시대까지는 이런 분위기가 남아있었다. 우익으로 분류되는 [[장택상]]이 좌파정치인 [[조봉암]]의 유가족을 돌봐주었던 일처럼 당대 유명인들 사이에는 이념을 넘어서 확고한 신념을 가진 사람에 대한 경애심, 존중 같은 것들이 있었다. ]이 남아 있었고, 지사 문화라는 것도 근본은 동아시아권 모두가 공유하는 [[성리학]]에서 나온 것이다 보니 일본 군인들이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을 보았을 때도 어느 정도 익숙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