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홍순호 (문단 편집) == 개요 == [[1943년]] [[5월 28일]] [[충청남도]] [[아산시]]에서 태어났다.[* 당시 행정구역 상으로는 아산군 음봉면 월랑리.] 초등학교 4학년까지 다닌 후 상경하여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입학, 1966년 졸업하고 [[학생군사교육단|학군사관]] 4기로 소위 임관했다.[* [[길형보]], [[지만원]] 등 육사 22기와 같은 해에 임관한 기수다.] 직능은 [[정보참모|정보]]. 38년에 이르는 군생활동안 서울대 출신답게 비상한 머리의 소유자라는 평판이 자자했지만 이상하게 빠른 진급과는 인연이 없었다. 온갖 보직을 다 경험하며 1990년 [[준장]] 진급, 1993년 [[소장(계급)|소장]] 진급을 모두 막차에 아슬아슬하게 했고 1998년 [[중장]] 진급을 할 때도 무려 9차만에 진급을 했다. 하지만 2001년에 결국 [[대장(계급)|대장]] 자리에 올랐으니 비록 잠시 늦더라도 바른(?)길을 간, [[대기만성]]의 표본이라 할 수 있겠다. [[학생군사교육단|학군사관]], [[육군3사관학교]], [[학사장교]] 등 비육사 출신 장교의 경우, 같은 해에 임관한 [[육군사관학교]] 출신보다 진급이 늦는 경우가 많다. 사실 진급한다는 보장만 있으면 빠른 진급보단 막차까지 버티는게 좋다. 빨리 진급하면 그만큼 빨리 퇴역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늦게까지 버티다가 막차에 진급하면 그만큼 월급을 더 받을 수 있고 연금도 늘어난다. 비육사출신은 [[한직]]을 맡아서 조금 돌아가더라도 괜찮지만 육사는 진급 경쟁에서 계속 밀리고 [[메이커 사단]], [[요직]] 등의 자력이 없으면 향후의 커리어가 어둡다.[* 실제로도 [[윤의철]]은 어떻게든 1초라도 빨리 진급하려고 부하들을 갈아 마시다가 결국 중장에서 사실상 진급이 막혔는데 이런 윤의철에 비하면 엄청 훌륭하게 군복무를 한 셈이다.] 이는 [[학생군사교육단|학군사관]], [[육군3사관학교]], [[학사장교]] 등 비육사 출신 장교의 경우, 같은 해에 임관한 [[육군사관학교]] 출신보다 [[한직]]에 관대한 군 인사정책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다. 만약, [[육군사관학교]] 출신이 이런 식의 진급을 한다면 [[중령]] ~ [[대령]] 언저리에서 제대하게 된다. 다만 홍순호는 운이 엄청나게 좋았다. 홍순호가 [[중장]]에 진급하기 직전까지 [[김영삼 정부]]였는데 [[김영삼]]은 [[하나회]] 똥물을 빼기 위해서 육사 출신을 의도적으로 냉대했으며[* 그래서 [[전두환 정부]] 이래 유일하게 [[육군특수전사령관]] 출신 [[대장(계급)|대장]]이 없는 정부가 [[김영삼 정부]]였던 것이다. 당시 [[특전사]] 수뇌부가 아주 [[하나회]]로 떡칠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김영삼]] 대통령은 이 '''"[[하나회|떡]]"'''을 다 걷어내느라 특전사 역시 냉대했던 것이다.] 사조직은 적발 즉시 군대에서 내보내 버렸는데 홍순호의 경우는 그 틈새를 이용해 막차로나마 진급이 되긴 되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시대를 꽤 잘 타고난 셈이다. 물론 2020년대 이후 대한민국 국군은 정리할 건 대부분 정리가 된 상황이라 [[알자회|사조직]]이나 구타 가혹행위가 발생하면 얄짤없이 군대 밖으로 내쫓는 구조가 정착되었으므로[* [[윤의철/논란|가혹행위로 인해 군대 밖으로 쫓겨난 장성]]이 생겨날 정도로 2020년대 군 장성 인사는 부하 관리 문제에도 매우 엄격해졌다.] 같은 계급에 이렇게 오래 남아있고도 진급할 일은 없게 되었다. 서울대 ROTC 출신 첫 장군[* [[사관학교]] 졸업 후 서울대 [[위탁교육]] 과정을 거친 장성들은 많았지만 서울대에 입학해서 4년을 마친 케이스는 처음이다.], 첫 서울대 학군단장, 첫 사단장, 첫 군단장, 첫 야전군사령관의 진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정책분야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여 군내에서 정책통으로 꼽힌다. 166cm의 단신[* 대한민국 국군 남자 장교로서는 거의 최단신 수준이다.]이지만 두뇌 회전이 빠르고 순간 판단력이 돋보이며 기획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매사를 꼼꼼하고 완벽하게 처리하는 일솜씨로 정평이 나있다. 가족으로는 부인 조영순 여사와 세 아들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