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홍승주 (문단 편집) == 개요 == [[명나라]] 말기의 [[장군]][* 시작은 문관이었지만 군인과 관료, 정치인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았던 시대였고 이 당시 명나라 병부 상서들은 대부분 문관출신이지만 청나라군이나 이자성군과 싸우러 직접 병력을 이끌고 야전에 나갔다.], 계료총독[* 홍승주가 투항하기전 최종적으로 올랐던 직책으로, 허베이성 북부 지역과 요동 전역의 행정, 군정을 총괄하는 직책, 그러니까 명나라의 대청 전쟁에서 홍승주는 총사령관에 해당되었다.], 병부 상서[* 명청 시대의 관직들을 보면 관례적, 비상시국으로 겸직 사례가 참 많다. 병부상서도 또한, 지방의 광역 행정 / 군사 수뇌였던 총독의 겸직 벼슬(+ 도찰원 우도어사 = 검찰청 검찰 부총장 / 감사원 부원장)로도 보직됐던 것이 여러 기록에서 보인다. 보통은 비상시국에 겸직된다. 겸직 목적은 해당 인물의 권위에 황제가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그의 권한 행사에 일종의 전권을 부여한 것과 같다. 물론 기존의 비겸직자는 그대로 본연의 직무를 수행하되 겸직자의 영역에선 관련된 하급자들이 전적으로 겸직자를 따른다고 볼수있다.], 자는 언연(彥演), 호는 형구(亨九). [[명청교체기|명말청초]]의 인물로, [[명나라]] 말기의 장수로서 [[이자성의 난|농민 반란]] 진압과 북방의 만주 군대와 수차례 전투를 벌였으나, [[송산전투|송산-금주 전투]]에서 패배하여 사로잡힌 이후[* 어떻게 보면 원숭환 이상으로 대단했던 인물이 투항해서 숭정제를 위시한 명나라의 잔존 지도층은 한동안 멘붕에 빠졌다. 특히 숭정제는 처음엔 그가 전사한줄 알고 그를 위한 제사를 주관했다고 한다. 이후 사실을 알고 슬그머니 중지한다....] [[청나라]]의 충성스러운 신하로서 여생을 보낸다. 뛰어난 군사적 능력으로, [[원숭환]]이 죽은 이후 양사창, 조문조, 노상승, [[손전정]] 등과 더불어 명나라의 명장으로 활약하였다.[* 조문조, 손정전은 이자성과의 전쟁에서 전사하고, 노상승은 청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양사창은 숭정제의 분노가 자기에게 향할것을 두려워 해 자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모두 청나라에서 시호를 내렸다.] 청나라에 귀순후에는 [[범문정]]과 함께 문관으로 활약, 청나라의 대륙 지배를 확고히 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두 왕조를 섬겼기 때문에 명의 충신들이나 청나라 시절의 원리주의적인 유학자들로부터는 욕을 먹었으나, 어쨌든 자신의 재주를 양쪽에서 다 써보고 천수를 누린 행운의 인물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