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홍윤성 (문단 편집) == 악행 == 하지만 홍윤성은 권세를 휘두르며 세간의 비난과 손가락질에도 불구하고 행패를 부렸고, 남이 베풀어준 호의는 아랑곳 않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패악질을 해댔다. 집 앞에 [[말(동물)|말]]을 타고 가는 것조차 용납하지 못해, 반드시 감시해 말 타고 지나가는 이를 두들겨 패 죽이게 했다. 참고로 홍윤성의 신분으로 보아 당시 홍윤성은 한양에서 살던 게 확실시되는데, 당시 [[한양도성]] 내에서 말을 타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은 [[양반]]밖에 없었다. 무고한 사람들을 많이 죽이고 논밭을 탈취해서, [[야사(역사)|야사]]에서는 홍윤성을 아예 '''[[살인마]] 정승'''이라 불렀을 정도. 홍윤성이 [[정승]]에 오른 것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홍윤성 [[고향]]의 유향소에서 [[노비]] 2명을 [[선물]]로 주었는데 홍윤성은 노비들이 튼실하지 못하다며 노비를 고른 담당자인 나계문을 잡아가서 죽기 직전까지 팼고 나계문이 일생에 걸쳐 가꾼 [[나무]]들을 베어버렸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집 종의 남편인 김돌산이 3명의 동조자들과 함께 나계문을 발가벗겨서 때려죽였다. 하지만 관아는 홍윤성의 권세가 무서워 홍윤성의 명을 받아 아전을 때린 김돌산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홍윤성의 [[폭행]]에 가담한 3명의 종만 체포하여 조사하는 시늉을 했으며, 홍윤성 집의 종들이 떼로 몰려와서 이들을 풀어줘도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나계문의 아내 윤덕녕은 감사에게 진정을 하는 등 억울함을 풀기 위해 만방으로 뛰어다녔으나 감사는 홍 정승의 비위를 건드렸으면 죽어도 싸다는 이유로 일가를 오히려 옥에 가두어버렸다. 조선 시대에는 노비가 자기 주인을 역모, 강상 이외의 사유로 형사 고발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소송에 제한이 없었다. 법이 문제가 아니라 홍윤성의 권력이 무서워 알아서 긴 것. 거기다가 윤덕녕은 [[온양온천]]에서 [[요양]] 중인 [[수양대군|세조]]를 직접 찾아가서 진정했고, 세조는 크게 노하여 김돌산을 [[능지처참]]하고 함께 폭행에 가담한 종들을 참수하고 사건을 은폐하려 든 [[수령]]과 [[아전]]들을 죄다 곤장을 쳐서 유배했으며 감사도 잘라버렸다. 세조는 아전의 아내에게 10섬의 [[쌀]]을 내려 "지아비의 원수를 갚기 위해 노력함이 가상하다"고 치하했으나 홍윤성은 벌주지 않았다. 일화는 홍윤성이 노비를 선물로 받은 주제에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온갖 악행을 일삼았을 정도로 포악한 인물이었다는 것과 정작 패악을 부린 당사자는 처벌받지 않았고 노비만 처형되었다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홍윤성은 하루가 멀다하고 만행을 저질렀으나 그럼에도 세조는 홍윤성을 감싸고 벼슬을 자꾸 올려 주었다. 심지어 홍윤성을 어릴 때 거두어 돌보던 숙부가 홍윤성을 찾아와 벼슬 자리를 하나 부탁하자 홍윤성은 논 20마지기를 요구하여 다툼이 벌어졌고, 결국 '''삼촌을 때려죽이고 앞마당에 [[암매장]]했다.''' 벼슬을 청탁한 숙부에게도 잘못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이 때는 딱히 부정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고, 홍윤성의 숙모가 원한을 품고 세조에게 탄원하였는데 "공신을 죽일 수는 없다"하여 홍윤성의 몸종들만 도륙당했다. 세조가 "이게 [[술]] 탓이니 술을 금하라"는 [[금주령]]을 내렸으나 홍윤성이 "신은 술이 없으면 죽습니다."라고 보채서 취소시켰다고 한다. 세조는 홍윤성에게 직접 경음당(鯨飮堂)이라는 호를 지어주고 도장까지 내려주었는데[* '경음'은 '고래 경'자에 '마실 음'자이니 한마디로 [[술고래]]라는 뜻이다.], 전술했듯 포악한 [[성격]]으로 밑사람을 하도 괴롭혀서 온갖 지탄을 받았으나 세조의 이러한 비호로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다. 실제로 '''[[평안도]] 군량미 30만 석을 혼자서 [[횡령]]'''했었음에도 세조가 덮어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다만 덮어주는 데에도 한계가 있기에, 하루는 [[술자리]]에서 "자중하지 않으면 숙부를 죽인 [[죄]]를 물어 극형에 처하겠다"고 꾸짖었는데 이에 홍윤성은 "주상께서는 [[단종(조선)|조카]]를 죽이시지 않았느냐"고 여유롭게 되받았고, 세조는 "배짱이 남다르다"며 웃고 말았다고 한다.[* '술자리에서는 군신 간의 예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왕명이 있었다고는 해도 배짱이 남다른 정도가 아닌데, 그럼에도 용서한 것은 세조가 술자리에서 저지르는 [[망언]]에 관대했던 것도 있고, 홍윤성이 세간의 욕을 얻어먹으면 얻을수록 보신 차원에서라도 세조에게 [[충성]]을 다 바칠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홍윤성에게 전재산이던 작은 논을 빼앗긴 노파가 땅을 돌려달라며 땅문서를 가지고 홍윤성에게 찾아가자, 그대로 노파를 잡아 돌 위에 거꾸로 매달고 모난 돌로 때려 죽인 후 그 시체를 길가에 버렸다. 그 길가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가였지만 홍윤성이 두려워 아무도 그 시신을 거두지 못했다고 한다. 거기다가 홍윤성은 자기 집 근처 시냇가에서 발을 닦은 사람까지 건방지다며 때려죽였고, 판서와 부사직의 아내까지 때려죽이기까지 했으며, 심지어 길가에서 한가하게 바둑을 두는 사람에게 "백성이 생업을 일삼지 않고 바둑으로 세월을 허비하니 벌하지 않을 수 없다"며 강제로 바둑알을 먹이기도 했다.[* [[삼국지]]로 유명한 중국 후한 시대의 포악했던 권신 [[동탁]]도 봄에 축제를 벌이는 백성들을 보고 "농사철에 일은 안 하고 노는 것들이니 도적떼가 틀림없다."라며 군사들을 풀어 모조리 죽여버린 일화가 있다.] 거기다가 홍윤성은 자기 마음에 들면 [[양반]]집 딸이라도 겁박해서 [[강간]]하거나 [[첩]]으로 삼았다는데, 한 번은 홍윤성이 양주를 지나가다 길거리에서 빼어난 미인을 보고는 그녀의 아버지를 부른 후 "네 딸을 첩으로 삼을 테니 집에 돌아가자마자 술상을 차려놓고 준비해라. 지체하면 죽인다"는 협박까지 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홍윤성이 갑옷과 투구를 쓰고 그 집으로 들이 닥쳤는데, 중문 안쪽에 숨어있던 여자는 홍윤성이 중문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뒤에서 홍윤성에게 칼을 겨누고는 "사족(양반)의 딸을 마음대로 첩으로 삼겠다고? 정식으로 아내로 삼는 거면 몰라도 첩으로 삼겠다면 당장 목숨을 끊겠다"고 홍윤성에게 호통을 쳤고, 결국 천하의 홍윤성도 이 미녀의 절개에 굴복하여 그날로 원래 부인과 이혼하고 이 미녀를 새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런 홍윤성은 이웃 사람이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면 많은 재물을 아끼지 않고 상으로 주는 등 의외의 면모가 있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