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홍의락 (문단 편집) ==== 국회의원 활동 ==== 2년 후인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험지 배려 케이스로 비례대표후보 20번을 받아 당선되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최고위원이었던 [[김부겸]] 전 의원이 힘을 많이 썼다고 한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대구 북구 을에서 출마를 준비 중이었으나, 20% [[컷오프]]에 걸려 공천에서 배제되자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대구가 민주당에서는 사지라 정무적 판단이 결여된 결정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쉽게 말해 대안도 없으면서 뭐하러 탈락시키냐는 것. 그런데 홍의락 본인의 의정활동 성적이 너무 뚜렷하게 부진해서 뭐라 항변할 말도 없긴 하다. 법안 대표발의건수가 비례대표 의원들 중 뒤에서 2등인데 최하위는 비례대표직을 임기 도중 승계한 [[신문식]] 의원이니 자신이 사실상의 최하위인 셈[* 다만 대표발의의 '''양'''만으로 평가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저 기준으로는 셧다운제 같이 명백히 '''사회적으로 문제되는 법안을 발의해도 점수를 얻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선 험지인 대구 출마를 일찌감치 결정하고 미리 지역구를 돌아다니느라 의정활동에 집중하지 못한 핸디캡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간판보다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쪽이 당선 가능성이 높아서 합의하에 잘랐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홍의락 본인의 반응으로 보아 그 가능성은 없다. 여론조사[* 3월 30일 영남일보-대구MBC, 4월 4일 조선일보, 4월 4일 매일신문-TBC]에서 2위 [[새누리당]] [[양명모]][* 대구시 약사회장 출신으로 [[북구 갑(대구)|북구 갑]]에 공천을 신청했다가 떨어지고 전략 공천. 그 후에도 자유한국당 북구을 지역위원장이었다가 건강상 이유로 사퇴했다.] 후보를 10%p 이상 앞선 것으로 나타났으며, 실제로 선거 결과 양명모 후보를 큰 차이로 물리치며 생환에 성공했다. 이로써 20대 총선에서 김부겸과 함께 '''1985년 12대 총선 이후 31년 만에, 소선거구제로 따지면 45년 만에 대구에서 민주당계 후보가 당선'''되는 일이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실제로 일어나게 되었다]].[* 단순히 야권후보 당선자로 따지면 15대 총선의 자민련이 있다.] 당선후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60413233635754|인터뷰]]에서 김부겸 의원은 홍의락 의원이 복당신청을 할 것 같냐는 질문에 당연히 할 거라고 답을 하였지만 홍의락 의원 본인은 당선된 후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03&aid=0007167699|인터뷰]]에 따르면 복당을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대구 칠곡 지역은 금호지구, 칠곡지구등 개발지구의 영향으로 40대 이하의 인구 비중이 대구 다른 지역에 대비해서 비교적으로 높은 지역이다. 하지만 [[달서구 갑]], [[달서구 을]] 등 다른 젊은 층 위주의 신시가지에 비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다.]. 따라서 당분간은 무소속으로 활동할 것으로 보인다. 2016년 9월,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발의에 이름은 올렸으나 정작 본회의 표결 때는 불참했다. 같은 민주당 출신 무소속 후보였던 [[이해찬]]이 복당하는 와중에도 홍의락은 복당하지 않았다. [[제19대 대통령 선거|2017년 대선]] 경선 과정에서 [[안희정]] 충남지사를 지지함에 따라 [[더불어민주당]] 복당 가능성이 점쳐졌으나, [[문재인]] 전 대표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면서 일단 복당 의사를 접었고 4월 13일 자체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차후 더불어민주당에 복귀할지 [[국민의당(2016년)|국민의당]]에 입당할지 결정하겠다고 하였다. 결국 '''대선을 5일 앞둔 5월 4일에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했다.''' 추경 예산안에 불참한 27명의 민주당 국회의원중 한 명이다. 다수의 의원들이 해외출장 등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 불참하게 되었다고 밝힌 가운데 홍의락 의원이 불참한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에 홍의락 페이스북에는 배신감을 느낀다는 지역주민의 성토가 빗발치기도 했다. 서울시 동대문구 을 3선에 대선후보까지 나왔던 홍준표가 자유한국당의 아성인 대구 북구 을 당협위원장을 신청했다고 한다. 서울 4선에 대권주자까지 했던 당대표가 대구까지 내려와서 출마할 정도니 수도권서의 자유한국당 약세를 그대로 보여주는 상황이긴 하나, 홍의락으로선 쉽지 않은 야당 거물급과 대결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 아무리 다른 지역, 젊은 세대가 홍준표와 자유한국당을 극도로 혐오하더라도 대구경북의 [[콘크리트 지지층]]은 건재하다.]. 다만 홍준표는 북구 을 총선 출마를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추대하겠다고 주장한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21대 총선]]까지 지역구 내 홍의락의 지지율이 높다면 [[제20대 국회의원 선거|20대 총선]] 때의 [[이한구]]처럼 도망칠 가능성도 있다.]. 또 지역구에서의 민심이 현역 홍의락 의원에 대해 나쁘지 않은 편임을 감안하면[* 애초에 19대 의원 시절 지역구를 박박 기다시피 했던지라 20대 총선 전에 민주당 소속일 때도 여론조사상 당선 가능성이 제법 높았고, 새누리당으로 갈 가능성이 사실상 없는데도 실제 선거에서 과반 득표로 당선된 것 자체가 확실히 지역구에서의 인기가 만만치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의외로 난적을 꺾고 3선 고지에 안착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홍의락으로서는 지역구 관리에 주력해야 하는 상황이며, 홍의락 본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홍준표의 북구을 당협위원장 임명을 지난 20대 총선 때 수성구 갑에 출마했다가 망신을 당했던 [[김문수]]가 떠오른다며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홍준표]] 대표가 지방선거 패배로 대표직과 당협위원장직에서 모두 물러남에 따라, 앞으로 지역구 관리만 잘한다면 얼마든지 당선될 가능성이 열렸다. 무엇보다도 집권 여당 소속이라는 점에서 내세울게 많기도 하고[* 실제로 대구 지역에서 정부를 상대로 한 온갖 민원(?)이 홍의락과 김부겸 두 사람에게 집중되고 있다. 민주당이 TK에서 맥을 못춘다고 해도 엄연한 집권 여당인 만큼, 정부에 줄을 대기 위해서는 민주당 소속 대구 국회의원인 두 사람말곤 대안이 없기 때문.]. 그리고 4년 후 총선. 4년 전과는 달리 여론조사에서 어떤 한국당 후보와 붙어도 뒤지는 것으로 나왔다. 지지율이 20% 후반에서 30% 초반에 형성되는 것에 비해 한국당 후보는 누구든 40% 근처에서 형성 중이다. 상황도 안 좋은데 선거 홍보 전략도 판단미스. 선거구호로 '힘 있는 3선 정치인, TK 대표주자'라고 내세웠는데 정작 유권자들은 'TK 대표주자는 김부겸이지 홍의락은 지난 4년간 중앙정치에서 존재감도 없었는데 무슨 소리냐'는 반응. 애초에 홍의락은 민주당에서 컷오프당해 내쫒기다시피 당에서 나와야 했고 이 점이 유권자들의 동정심을 자극해서 뽑힌 것이다. 당선 직후 대구 북을 유권자들이 '민주당으로 돌아가지마이소'라고 말했다고 홍의락 본인도 말한 바 있다. 한 마디로 민주당에서 내쫒겨서 불쌍하니까 뽑아줬는데(...)[* 홍의락은 처음에 지역을 다질 때 아파트 상가의 작은 공간에서 시작했고, 간판에서 당의 색깔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 당선 이후 네거리의 높고 큰 빌딩에서 파란색 간판의 의원실을 꾸렸다. 물론 매주마다 민원이 들어오는 지역주민과 만나기 위해서는 큰 공간이 필요하고 또 통행량이 많은 사거리에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것은 좋은 행동이다. 근데 뽑아준 주요 요인이 되었던 '무소속+불쌍함'의 이미지가 날아갔다는 점이 문제..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유권자들은 제1당 소속 재선 국회의원의 위엄은 눈으로 확인했지만 그것이 표로 연결되진 못했다.] 그리고 대구 북을은 3선 이상 정치인을 세 명[* [[김용태(1936)|김용태]], [[안택수]], [[서상기(정치인)|서상기]]] 겪어 봤다. [[김용태(1936)|김용태]]는 [[중선거구제]] 동구북구 선거구, 북구 단일 선거구에서 총 4선을 지냈고 북구가 갑/을로 처음 분구된 [[제15대 국회의원 선거|15대 총선]]에서 북구 을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안택수]]와 [[서상기(정치인)|서상기]]는 대구 북을에서 2선, 3선을 지냈다. 그런데 김용태는 [[행정안전부장관|내무부장관]] 등을 지낸 거물이지만 [[김영삼]]의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을 끝으로 정계를 떠난 지 20년이 넘었고 안택수와 서상기는 중앙정치에서 당선 전부터 물러날 때까지 좋든 안 좋든 존재감을 드러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힘 있는 다선 정치인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기존의 스타 정치인이면 모를까 기존의 무명을 3선까지 키워서 딱히 화젯거리라던가 득을 봤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유한국당 북을 당협위원장이었던 홍준표가 전자라면 홍의락은 후자다. 정말 힘 있는 3선 정치인을 내세우고 싶었다면 친문이었어야 했다. 그것도 누구나 알 정도의 친문. 그러나 홍의락은 TK에서 바닥을 다진 지역 정치인 출신이고 친문하고는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다. 굳이 따지자면 김부겸계인데 김부겸이 문재인 정부에서 장관을 역임한 것은 사실이나 한나라당 출신 독수리 5형제 이미지는 강해도 친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게 중요했던 이유는 상대하는 미래통합당 후보는 전 행정부시장 출신이어서, 그만큼 대구시 행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유권자들이 판단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친문을 내새웠다 하더라도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구 경북 지역의 강한 반 문재인, 반 민주당 성향으로 인해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조국 전 장관 임명에 홍의락 본인이 지역 여론을 의식해서 비판적인 발언을 하는 처지였다[[https://www.yna.co.kr/view/AKR20191227057500053?input=1195m|#]]. 여기에 추가로 터진 코로나 사태로 반문 정서에 쐐기가 꽂힌 상황[* 이를 만회하고자 김부겸과 함께 코로나 추경을 촉구하고[[https://newsis.com/view/?id=NISX20200316_0000956791&cID=10301&pID=10300|#]], 소기의 성과도 거뒀지만[[https://www.nocutnews.co.kr/news/5310843|#]]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거 직전까지 여론이 좋지 못했다.]에서 다른 선거 구호를 내새울 여지가 사실상 없었다. 거기다 [[홍익표]], [[김어준]], [[유시민]]과 [[더불어민주당]] 내 청년조직 등 [[더불어민주당]]계 [[친문]] 인사들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대한 망언으로 인해 [[김부겸]]과 홍의락이 수습을 하더라도 [[대구광역시]]에서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도가 더 떨어졌다. 이에 반해 [[부산광역시]], [[울산광역시]], [[경상남도]]에서는 21대 총선 당선자 숫자는 줄었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득표율이 소폭 상승하였다. 그렇게 21대 총선에서 여론조사대로 더블 스코어에 가까운 득표수로 낙선되고 그렇게 '힘 있는 TK 대표 3선 정치인'의 꿈은 무산되고 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