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홍콩/역사 (문단 편집) == 반환 이후 == 결국 홍콩은 마지막 [[총독]]인 [[크리스토퍼 프랜시스 패튼|크리스 패튼]]의 임기를 끝으로 [[1997년]] 7월 1일 중국령 [[홍콩 특별행정구]][[홍콩 반환|가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_XdvRNXZmN8|당시 영상]] [[천안문 6.4 항쟁]]의 여파 때문인지 [[홍콩인]]들이 받은 충격과 불안감은 실로 대단한 것이였으며, 실제로 과거 [[베트남]]이 공산화 되었을 때 탈출한 남베트남인([[보트피플]])처럼 홍콩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가버린 이들도 꽤 된다. 특히 많이 간 곳이 [[캐나다]]에서도 [[밴쿠버]]다.[* 홍콩인들의 이주로 밴쿠버 부동산이 홍콩인들에게 싹쓸이당하며 Hong Kong과 Vancouver가 합쳐진 홍쿠버란 별명이 생기기도 했다. 홍콩 반환과는 상관 없는 경우지만 [[왕조현]]도 밴쿠버에 거주한 일이 있다.] 이 시기의 홍콩을 무대로 한 [[홍콩 97]] 같은 작품도 있을 정도다. 반면 중국으로의 복귀를 환영, 지지한 홍콩인들도 꽤 있었다. 그리고 홍콩 반환 이후 [[일국양제]]가 정착되고 10년간 홍콩 사회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홍콩으로 복귀한 홍콩인들도 많아졌고 본인들은 이민가도 현지 출생 자녀들은 외국 국적이 있어 홍콩으로 귀국시켜 중국계 외국인으로 홍콩에 거주토록 했다. 그 덕분에 10~20대의 젊은 세대 홍콩인들은 [[캐나다]]와 [[호주]] 국적자가 많다. 반환 이후에는 당시 [[타이베이]]의 [[중화민국]]과 수교하고 있으면서 홍콩에 영사관을 설치했던 16개국[* [[감비아]], [[과테말라]], [[나우루]], [[니카라과]], [[도미니카 공화국]], [[도미니카 연방]], [[라이베리아]], [[벨리즈]], [[세인트 루시아]],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코스타리카]], [[파나마]], [[파라과이]], [[투발루]].]은 영사관을 폐쇄해야 했다.[* 파라과이는 영사관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 일단 당시엔 아직 [[포르투갈]]령이었던 [[마카오]]로 이전시켰으나, 2년 후 마카오마저 반환되면서 결국 철수해야 했다. 라이베리아 영사관은 반환 당시에는 중국과도 동시 수교 중이어서 문제가 없었으나 반환 두 달 후인 1997년 9월에 중국과 라이베리아가 단교하면서 그로부터 한 달 만에 쫓겨났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당시 [[중화민국]]과 수교가 유지되고 있었지만 이미 1996년 11월에 1998년 1월 부로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하겠다는 선언을 했고 그렇게 되었다. 과도기 동안 영사관을 유지하는 것을 허락받았다.[* 이때 쫓겨났던 나라들 중 [[감비아]](2013-2016), [[도미니카 공화국]](2018), [[도미니카 연방]](2004), [[라이베리아]](2003), [[중앙아프리카공화국]](1998), [[코스타리카]](2007), [[엘살바도르]](2018), [[니카라과]](2021)는 후에 중국과 수교하고 감비아는 '13년에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16년에 중국과 수교했지만 수교 후 홍콩에 영사관을 복구하지 않았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만이 2006년까지 홍콩에 [[명예영사]]를 두었을 뿐이다.] 그리고 파나마는 2017년에 중국과 수교한 후 홍콩에 영사관을 다시 설치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