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화관 (문단 편집) == 조선 말기 왕실 여자들의 모자 == [include(틀:전통여성모자)] [[조선]] 말 [[대한제국]] 초기에 예복에 착용했던 여성의 관모(冠帽). [[신라]] 문무왕 때 중국의 복식이 들어오면서 함께 전래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궁중에서 주로 착용했고, [[고려]]시대 때에는 귀족 부녀자 예복에 썼다. [[조선시대]] 들어서야 크기가 작아졌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64555|링크]] [[조선]] 말기 들어서 [[족두리]]와 마찬가지로 왕가의 여인들이 [[당의]]를 입고 공식 석상에 나설때 머리에 두르는 첩지 위에 추가로 착용하였다. 영조 때 [[가체]] 금지령을 내렸다가 폐지되고, 이후 정조 대의 얹는 가체 단속을 거쳐 순조 대에 [[족두리]] 착용과 쪽머리가 유행할 때 화관도 같이 쓴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말기 기준으로는 두꺼운 종이에 무늬를 새기고 검정칠을 한 후 금은보화로 장식하며 양 옆에 족두리 비녀를 꽂아서 만들어진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64555|링크]] || [[파일:덕혜옹주111.jpg|width=276]] || ||<-2><:> [[덕혜옹주]] 사진 || 여기서 [[덕혜옹주]]가 쓰고 있는 모자가 화관이며, 이처럼 [[고종황제]], [[순종황제]] 시대에 왕족 여인들이 [[당의]] 차림으로 찍힌 사진들에는 꼭 화관을 쓴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실 첩지 자체가 화관이나 [[족두리]]를 고정하는 고정도구이기도 한데, [[한국 사극]]에서 매양 보이는 [[창작물의 반영 오류|모습]]인 왕실 여인이 첩지만 두르고 나다니는 것[* [[당의]]가 아닌 평복 차림이라면 첩지만 달아도 된다. 궁중 여인들은 언제 어디서 [[족두리]]나 화관을 써야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https://blog.naver.com/leeje10/220781834981|링크]]]은 마치 왕이 상투관만 쓰고 익선관을 안쓰고 다니거나, [[양반]]이 상투관만 쓰고 갓을 쓰지 않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 수준의 [[https://theqoo.net/square/2174762264|오류]]이다. --첩지도 제대로 된 첩지가 아니라 컵케이크 수준이다-- 사실은 재현 반영을 무시했거나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화관을 쓰면 그 무게 때문에 장시간 촬영해야 하는 연기자들 목에 부담이 가는 데다가 카메라의 프레임을 잡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알고도 무시하는 것이다. 대례나 예식 장면이 아니면 가체나 관의 고정을 위한 인터페이스인 첩지만 하고 다니는 건 그 때문. 하지만 드라마 비밀의 문에서는 혜경궁 홍씨로 분한 박은빈이 족두리를 착용하고 [[https://blog.naver.com/leeje10/220781834981|등장]]했다. 물론 해당 복식도 혜경궁 홍씨가 '빈' 신분인데도 보를 달았기 때문에 완벽히 재현했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적어도 무게 핑계를 대면서 지키지 못할 만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뒤에 쪽진머리를 하고 비녀를 꽂는 것 역시 가발이긴 매한가지다. 게다가 족두리는 소재 자체가 가볍고, 화관 역시 [[조선시대]]의 것은 무겁지 않은 편이다. 그나마 족두리를 반영한 사극이 선술한 비밀의 문과, MBC에서 1998년에 방영한 [[대왕의 길]] 정도다. [[http://www.koreascience.or.kr/article/JAKO200011922009912.pdf|출처]] >교리 윤득양(尹得養)은 말하기를, >"혹은 [[족두리]]라고도 하고 또는 화관(花冠)이라고도 하는 것인데, 만일 사치스럽게 꾸미는 것을 금하지 않고 머리의 장식을 호화스럽게 하게 되면, 그 폐단은 다리보다 더 클 것입니다." >---- >《영조실록》 영조 33년 11월 1일 [[족두리]] 중 장식이 있는 꾸민족두리를 칠보족두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화관과 족두리의 명칭의 혼용은 종종 일어나서 칠보족두리를 족두리가 아닌 화관으로 보기도 한다. || [[파일:순정효황후친잠례기념사진.jpg|width=100%]] || || 1906년 [[순정효황후]] 친잠례 기념 사진 || 위의 사진 자료는 화관의 착용 제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가운데의 [[순정효황후]]를 비롯해 예복인 [[당의]]를 착용한 [[여성]]들은 모두 화관이나 [[족두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치마저고리만 입은 두 명의 여성은 첩지 머리를 하고 있다. 이 밖에도 여러 사진 자료에서 여성들이 의복에 맞춰 머리 모양을 갖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