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화교 (문단 편집) === [[일본]] === 화교는 전근대, 근대에 청나라 말기나 식민지 대만 또는 중화민국때 이주한 사람들을 부르는 단어로서 소수 도래인들을 화교로 부르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며 지금까지 그래왔던 적이 없고 화교들 또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도래인들도 한반도에서 왔는데도 족보 조작으로 중국에서 왔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화교라는 것은 전근대 시절 이주민을 지칭하는 것으로 확실히 쓰여야 하는 것이다. 일본의 화교는 1900년대 초반에 민남이나 타이완에서 온 사람이 주류로 [[요코하마]], [[고베]] 등지에서 집단 거주하며 제법 영향력이 크다. [[반중]] 감정이 강한 일본이라서 차별이 매우 많다. 재일교포인 경우에는 성공한 사람들과 일본인들과 잘 지내는 사람이 많지만 화교들은 중국어 발음이 잘 고쳐지지 않아 차별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귀화]]하지 않는 이상 [[정치]]권 및 [[공무원]] 사회에서도 차별받는다. 아래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재일 화교 대부분이 [[대만인]]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역설적인 일.[* 대만은 일본의 요나구니섬과 가깝다. 대만인들이 1910년대부터 일본으로 노동자로 이주했고 개중에는 대만섬이 아닌 광동성, 푸젠성에서 온 외성인들도 있다.] 근래에 일본에서도 화교는 신화교와 기존의 구화교로 나뉜다. 신화교는 [[1972년]] 중일수교 이후 들어온 [[중화인민공화국]] 사람들이고 구화교는 [[중화민국]] 사람들이다. 신화교 중엔 일본계도 꽤 있다. 1945년 일본 패망 후 중국에서 도망치지 못하고 일본 제국 시절에 식민지에 체류, 중국인으로 살다가 중일수교 이후 일본으로 돌아간 사람들로서 이들을 [[히키아게샤]]라고 부른다. 약 27년 동안 중국에 남은 4천명의 일본계 중국인들은 중국인들과 통혼하는 등 많은 중국인 친족을 만들었고 중일수교 이후 일본 국적을 회복하는데 이들은 비자를 이용해 수십 명씩 일본에 건너가게 된다. 일본 사회는 이런 일본계들을 가이진(外人)[* 가이진은 외인(外人)의 일본식 독음으로 외국인과 달리 좀 배타적인 뉘앙스가 있는 단어다.]에 걸맞게 당연히 중국인 취급. 그리고 [[만주국]]이나 [[왕징웨이 정권]]에 부역하던 친일 성향 한족들이 중국 출신 히키아게샤들을 따라 일본 본토로 도망치기도 했으며, 한국 화교들 중 일부가 다시 일본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한국의 화교들이 [[중화민국]] 사람인 것을 생각하면, 신화교와 구화교로 나뉘는 것은 한국과 일본이 비슷하다. 다른 점은 한국의 구화교들이 대부분 산동 출신인데 비해, 일본의 구화교는 진짜로 대만 출신들이 많다. 대부분 [[본성인]] 출신들이다.[* 소수의 광동·푸젠 출신 외성인들도 있다.] 이는 [[1895년]]부터 대만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탓에 대만인들이 일본으로 많이 왔기 때문이다. 구화교와 신화교는 [[민단]]과 [[조총련]]이 대립하듯이 일본 내에서 2개의 중국계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다. 또 일본에도 일본과 거리가 가까운 산둥 출신들도 꽤 된다.[* 다만 한국에 비하면 매우 적다.] 본성인계 구화교와 비슷한 케이스로 [[관동주]]계 화교들 및 [[만주국]]계 화교들도 존재하며 후자의 경우 한족계 [[만주군]] 패잔병 혈통인 경우도 있다. 특히 구화교와 신화교 중 [[중국 공산당]]의 박해를 피해 온 사람들은 일본 극우의 사상에 동화되는 경우가 많아 화교사회에서도 극단주의로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유명한 일본 화교로는 왕전즈(일본명 [[오 사다하루]])가 있다. 아울러 인스턴트 [[라면]]을 발명한 [[안도 모모후쿠]] 역시 화교출신이다. 애니 성우인 [[한 케이코]], [[한 메구미]], [[루 팅]], [[나가에 리카]]도 있다. [[재일 중국인]]은 [[1980년대]]까지 5만명 수준으로 그리 많지 않았지만 중국의 개혁 개방 정책으로 중국인 노동자들이 가난을 이유로 일본에서 3D 업종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1980년대 이후에 중국인(화교) 들의 인구가 한국 재일교포인구보다 많아졌다. 그 이유는 한국 재일교포들의 귀화가 늘었으며 가난을 피해 일본으로 노동을 하러 온 중국인의 인구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존재하는 미국인 인구보다 한국에서 노동을 하러 온 중국인의 인구가 더 많아진 것과 비슷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