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화교/대한민국 (문단 편집) === 한중수교와 1990년대 === 1992년 한국은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 단교했다. 한중수교 양해각서 및 국제법과 국제관례에 따라, 명동 자리에 있던 대만 대사관은 그대로 중국 대사관이 됐는데 대만 정부가 혹시나 해당 부지를 대만계 단체 등에 팔 것을 우려해 한국 정부는 단교 1주일 전에 비밀리에 통보하고 3일 전에 공식 통보함으로써 물리적인 시간을 주지 않았다. 결국 대만 정부는 부지를 그대로 중국에 넘겨주게 되고 [[청천백일기]]가 내려가고 [[오성홍기]]가 올라가는 동안 화교들이 몰려들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나마 한국 정부는 신사적인 편이었는데 [[프랑스]]나 [[일본]]은 단교 때 수도와 전기를 끊고 [[경찰]]을 투입해 저항하는 대사관 직원들을 퇴거시켰다. [[미국]] 같은 경우에는 시간을 주어 대만이 대사관으로 쓰던 부지를 대만계 단체에 매각할 수 있도록 했는데 그 자리를 그대로 자신들의 대사관으로 쓰려던 중국에 자국 내 재산 동결과 같은 보복 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1992년은 재한화교들에게 중대한 분기점이었는데, 근래에는 [[신화교]]의 등장에 한국에서 중국 대륙인을 보기가 쉬워졌고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중국에 우호적인 화교들도 꽤 있다고 한다. 다만 중장년층 이상 화교에선 여전히 중국 대륙인들을 [[빨갱이]]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 화교들은 [[중국 국민당]] 당원들도 꽤 있는데 최근엔 대만 독립파를 지지하는 화교들도 소수이긴 하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되어버리면 본인 연고가 산둥이 맞다면 중화인민공화국을 택하지 않는 한은 진짜 대만 독립하면 자신의 국가정체성은 완전히 없어진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는 있다. 실제로 화교들을 보면 의사나 한의사가 꽤 많은 편이다. 특별전형으로 들어오는 수만 해도 세자리를 훌쩍 넘어간다. 각 학교당 몇명 수준이지만, 전국 한의대 의대 숫자를 합치면 수십개가 되니..... 그래도 가장 많은 건 식당이지만. 미국 [[캘리포니아]]에는 약 1만명에 가까운 한국 화교들이 이주해있는데 [[민남어]]를 쓰는 [[복건]]이나 [[광동어]]를 쓰는 [[광동]] 출신들과 달리 대부분이 [[산동]] 출신들이라 소속감이 달라 한국 화교들은 미국내 [[차이나타운]] 대신에 [[코리아타운]]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중국어]]의 [[방언]]간 차이는 웬만한 [[유럽]] [[언어]]들간의 차이보다 훨씬 더 크다 보니깐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1989년 [[천안문 6.4 항쟁]]에 참가했다가 중국 정부의 탄압과 체포를 피해 [[한국]]으로 [[망명]]한 사람들도 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중국이 아닌 홍콩이나 대만에서 이주해온 것으로 위장하면서 국내 화교 단체와도 연관을 맺지 않았다. 자국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혹시 있을 지 모를 [[테러]]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 그 중에는 아예 한국인처럼 융화된 사람도 적지 않다. 이들 중에는 자녀들이 성인이 된 후에야 사실은 부모 본인은 중국에서 온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여서, 자신을 완전한 한국인으로 믿고 자란 자녀들이 놀라는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철저하게 조심하였다고 한다.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난 화교들은 [[중국어]]가 스펙이 되자 중국어를 배우러 교육기간의 일부를 [[대만]]이나 [[중국]]에서 보내는 일이 생기고 있다. 집에서 [[중국어]] 사용이 줄어들고 화교학교 교육으로도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화교 3세대 이상의 경우 [[모어]]는 거의 [[한국어]]라 봐도 무방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