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화궈펑 (문단 편집) === 고향 산서성의 평가 ===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중앙의 평가와는 달리 고향 산시성(산서성)에서는 국가의 최고지도자로 오른 자랑스러운 인물이라서 대대적인 기념사업을 벌였다. 왜냐하면 화궈펑은 [[진(희성)|진나라(晋)]]-[[조나라]]-[[병주]]시절을 포함해 산서성 지방 출신 인물로는 역사 상 유일하게 통일 중국의 최고지도자로 오른 인물이기 때문이다. 유명한 당나라의 唐자가 진(섬서성의 통일 秦 말고, [[진문공]] 등을 배출했던 [[진(희성)|산서성의 晉=晋]])의 극초기 이름이라 산서성(옛 병주)의 별칭으로 쓰여왔고, 북주 및 수 왕조에게서 가까운 친인척으로서 당국공으로 분봉받아(라지만 무슨 지방자치를 한 것은 아니고 [[식읍]] 정도) 그 중심도시인 [[타이위안시]]가 훗날 왕조의 초기 근거지이자 발상지가 되어 당나라 내내 중시되었지만, 그곳은 일종의 영지였고 이연-이세민 부자 모두 출생지는 섬서성의 장안 근처이다. 산서성 사람들은 자기 고장사람인 화궈펑이 문혁 당시 마오쩌둥의 위세를 호가호위하며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고 무고한 이들을 박해한 장칭 등의 4인방을 제거하고, 별다른 혼란 없이 권력을 덩샤오핑에게 선양해 이후 중국이 별 정치적 혼란 없이 개혁개방을 할 수 있었던 것을 높이 평가하여 국가적 위인으로 추모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2011년에 산시 사람들의 주도로 고향에 대대적인 능묘를 조성했고, 화궈펑의 유해를 이장했다. 무덤이 크고 아름답게 조성되었는데 아예 이름부터 화국봉능묘, 약칭 "[[https://zh.wikipedia.org/wiki/%E5%8D%8E%E5%9B%BD%E9%94%8B%E9%99%B5%E5%A2%93|화릉]](華陵)"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신해혁명]] 즉 제정 종식 이후에도 정치지도자들의 묘를 황제의 무덤인 "릉"이라 부르는 사례가 몇 있긴 하다. 대표적인 예가 [[쑨원]]의 묘인 [[중산릉]]. 다만 마오쩌둥조차도 무덤에 능을 붙이지 못했다.] 이 화릉은 중국의 국부인 쑨원이 묻힌 남경의 중산릉보다도 10배가 크며, 북경의 [[모주석기념당]]보다도 더 크다. 이 무덤은 그 규모가 축구장 14개 규모인 10만㎡에 이르고 365개의 화강암 계단을 쌓아올린 뒤 그 위에 묘실과 비석 등을 설치했고 묘비의 높이도 5.5m나 된다. 이는 마오쩌둥의 무덤인 규모가 훨씬 크고 옛 황제들의 무덤과 비견될 정도의 크기인데 이 때문에 중국 내에서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다. 중국의 중앙 언론에서는 이례적으로 "별로 한 것도 없는 사람에게 쓸데없이 돈을 쓴다"며 산시성 지방정부를 비판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시성에서는 역시 고장 출신 위인인 화궈펑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가 자주 벌어지며 2021년에는 화궈펑 탄생 100주년 기념식이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서도 [[왕후닝]]과 [[한정(중국 정치인)]] 등의 중공당 상무위원들이 참석해 열렸다. [[분류: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주석]][[분류: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부주석]][[분류: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총리]][[분류:중국공산당 9기 중앙위원회 위원]][[분류:중국공산당 10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분류:중국공산당 11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분류:중국공산당 12기 중앙위원회 위원]][[분류:중국공산당 13기 중앙위원회 위원]][[분류:중국공산당 14기 중앙위원회 위원]][[분류:중국공산당 15기 중앙위원회 위원]][[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6.25 전쟁/군인]][[분류:1921년 출생]][[분류:2008년 사망]][[분류:뤼량시 출신 인물]][[분류:중국의 무종교인]][[분류: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장]][[분류:아시아의 독재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