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화북전역 (문단 편집) === 국민정부의 전쟁준비 === 기찰정무위원회 위원장 [[쑹저위안]]은 일본과 국부적 해결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했으나 장제스의 입장은 강경하였다. 7월 9일 장제스는 26군 소속 2개 사단을 스좌장 혹은 바오딩으로 전진 배치시키고 40군과 84사단을 스좌장에 집결하라고 지시했다. 또한 29군과 쑹저위안에게 중앙의 북상파병 결정을 통보하는 한편 사천에 있던 군정부장 [[허잉친]]에게 난징으로 돌아가 군의 재편에 착수하라고 지시하고 [[쉬융창]], [[청첸]], [[탕성즈]]에게 21사단, 25사단을 거느려 출동하고 각지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선전포고 절차를 내리라고 지시했다. 또한 7월 10일 장제스는 일본 대사 [[가와고에 시게루]]에게 일본군의 행위는 계획된 도발이며 극도의 불법행위라고 항의하는 한편 전국의 부대와 행정기관에 다음과 같은 전보를 보냈다. ||일본군이 도발하여 일본군과 우리 29군이 완평 부근에서 서로 대치하고 있다. 지금 예하 부대에 명령을 내려 모두 경비를 강화하고 항전을 준비하도록 하였다. 동시에 제26군 2개 사를 출동시켰고, 제40군 및 제85사 각 부대를 신속하게 바오딩과 스좌장으로 이동시켜 지원에 대비하였다. 이외에 제21, 제35 2개 사를 계쏙해서 무건에 기록된 것으로 이동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방금 보고에 의하면 쌍방이 철병하여 담판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인은 교환하여 속셈을 헤아릴 수 없다. 전국 각 지방의 부대는 거듭 착실하게 준비를 하고 조금도 태만히 해서는 안된다. 반드시 만일에 대비하여야 한다.|| 7월 11일, 일본 정부는 정전령을 체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조선군 20사단과 관동군 2개 여단이 정부의 명령을 받지 않고 무단으로 파견된 것에 대해 사후재가를 해주었으며 여기에 더해 보병 3개 사단을 화북으로 파견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장제스는 일본군의 목적이 평화에 있지 않음을 확신하고 7월 12일 군사 징발령을 공표하였다. * 1. 항전을 위한 군대로 제1선 1백개사, 예비군 80개사를 편성하고 7월 말까지 대본영의 각급 사령부를 비밀리에 조직한다. * 2. 현재 보유한 6개월 분의 탄약은 장강 이북에 삼분의 이, 장강 이남에 삼분의 일을 배치한다. 탄약공장이 폭격되는 경우를 고려해 [[프랑스]], [[벨기에]]에서 구입을 교섭하고 [[영국령 홍콩|홍콩]],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베트남]] 경우의 수송 루트를 확보한다. * 3. 병사 1백만, 군마 10만두의 6개월 분 식량을 준비한다. 이날 외교부장 왕충후이가 난징의 일본 대사관에 각서를 보내 화북에 관한 지방당국의 협약은 중앙정부의 승인을 요한다는 국민정부의 입장을 통보하면서 쑹저위안과 일본 사이의 협정을 무효로 간주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장제스는 상진에게 4개 단을 스좌장으로 전진배치하라고 지시하는 한편 26군 군장 [[쑨롄중]]과 40군 군장 방병훈에게 베이핑 방어를 책임지고 쑹저위안의 지시를 받을 것을 지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