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화신그룹 (문단 편집) == 연혁 == 1926년 유재 [[박흥식(기업인)|박흥식]] 창업주가 경성부 황금정에 '선일지물'을 세운 게 기원이다. 초기에는 종이 도매업 등을 하다가 1930년에 신태화로부터 귀금속점 '화신상회'를 사들여 이듬해 법인화시켰다. 1934년에 화신연쇄점을 열었으나 이듬해 1월 화재로 전소되는 수난을 겪다가 1937년 종로통에 '[[화신백화점]]'을 열어 성업했다. 다른 한편 1935년에 대동흥업을 세우고 1939년 서우사범학교[* 현 광신중고등학교 및 광신방송예술고등학교]를 인수했으며,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조해 각종 매체에 일본군 지원입대 권유를 하기도 했고, 1941년 화신연쇄점, 화신무역, 화신지물 3개를 통합해 '화신상사'로 개편한 뒤 1944년에는 조선비행기공업을 세웠다. 1945년 8.15 해방 후 1948년에 조선우선으로부터 무역선 '앵도환'을 빌려 마카오 등으로부터 해산물 수출도 개시하고 북한과도 비공식적으로 교역코자 했으나, 1949년 반민특위 설치 후 박흥식이 구속되고 앵도환도 북한 당국에 의해 압류됐다. 1950년 6.25 전쟁 후 화신-화신상사-화신백화점 3개 법인을 '화신산업'으로 개편했고, 1953년 휴전 후 흥한방적을 세우고 1955년에는 화신백화점 근처에 신신백화점을 개점했다. 1961년 5.16 쿠데타 후 '부정축재 기업'으로 낙인찍혔으나 1962년에는 신신무역을 흥한화섬으로 재창립한 뒤, 이듬해에 송도유원지 개발을 위해 인천도시관광을 세웠다. 흥한화섬은 1966년 경기도 남양주군 미금면 도농리에 공장을 준공했다. 그러나 경영부진으로 한국산업은행에 넘기고 1972년 화신전기, 1973년 화신쏘니 및 화신레나운, 1975년 화신타이거리싱 등을 각각 세워 재기를 꾀하려다 제1차 [[오일쇼크]]를 거치며 수렁에 빠졌고, 박흥식은 재무부에 구제금융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채 1980년 10월에 최종 부도와 동시에 그룹은 해체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