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화흡 (문단 편집) === 후반기 === 조조가 한중의 장로를 공격하려고 할 때 화흡은 시의 적절한 의견을 내세워 시기를 보고 군대를 이끌고 백성들을 이주시키면 수비대를 설치하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조조는 화흡의 의견을 포기했다. 대표적으로 그 자리에 남은 것이 [[양부(삼국지)|양부]] 같은 경우. 그 후에 낭중령으로 임명되어 다시 지방으로 나갔다가 220년에 [[조비]]가 즉위하자 화흡은 광록훈에 임명되었고, 안성정후에 봉해졌다. 226년에 [[조예]]가 즉위하자 승진해 서릉향후에 봉해졌고, 식읍 2천 호를 받았다. 태화 연간[* 227 ~ 233년이다.]에 계절풍이 이르지 않아 흉년이 들었는데, 이 때 [[고당륭]]이라는 자가 이것은 담당관리 가운데 직무를 근면하게 수행하지 않는 자가 있어 하늘의 질서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고당륭의 주장에 조예가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묻는데, 여기서 화흡은 계절풍이 오지 않은 것은 농민들의 어려운 생활 때문이라고 하면서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는다. >백성들은 드물고 밭가는 사람은 적으며, 떠돌아다니며 먹고 사는 자들이 많습니다.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으며, 백성은 곡식을 명으로 삼습니다. 따라서 한 시절의 농업 생산을 허비하게 되면 생존과 번식의 근본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선왕은 번잡한 요역을 피함으로써 오로지 농업에만 힘쓰도록 했습니다. 봄과 여름 이래로 요역에 시달리고 농업은 황폐화되었으므로 백성들은 개탄하고 있습니다. 계절풍이 이르지 않는 것은 반드시 이러한 데로부터 말미암지 않음이 없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소멸시키고 회복시키는 방법으로 절약과 검소보다 큰 것은 없습니다. 태조(조조)께서 위대한 사업을 세우고, 군대를 옮기는 비용을 공급하고, 군대에게 상벌을 주는 비용을 공급하고, 관리와 선비들에게는 물자와 식량을 풍부하게 하며, 창고 속에는 곡식과 비단이 많이 있도록 했는데, 이는 태조께서 쓸모없는 궁전을 꾸미지 않았고, 헛되고 과다하게 지출되는 비용을 없앴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의 관건은 진실로 번잡한 노역을 폐기하거나 생략하고, 그 다른 임무를 덜고 없앰으로써 군비를 저장하는 것입니다. 세 방면을 지키고 방어하는 것은 마땅히 미리 방비하는 것에 있습니다. 적들의 허와 실을 헤아리고 사졸을 양성하며, 적을 이길 수 있는 계책을 세우고 공격해서 취할 수 있는 계략을 밝히고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구해야합니다. 만일 책략이 평상시에 정해져 있지 않고, 작은 적을 경시하고 얕보게 되면 군대가 자주 출동해도 오히려 힘만 들 뿐 공이 없게 됩니다. 이른바 '무(武)를 숭상하는 것은 이길 수 없다.'는 고인의 훈계입니다. 그 후 화흡은 전임해 태상이 되어 청빈하고 검소함을 생활을 하며, 자신의 밭과 주택을 팔아서 자급했다. 당시 사총팔달 등의 사치스러운 유행이 싫었던 조예는 이를 크게 칭찬하면서 그에게 곡식과 비단을 하사했으며, 세상을 떠난 후에 시호를 간후(簡侯)라고 했으며 아들 화리가 뒤를 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