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환도성 (문단 편집) === [[고구려]]와 [[한나라]]의 전쟁 === 서기 28년, 후한(後漢)의 요동태수(遼東太守)가 침입해왔는데, 그 군세가 막강해서 막기가 힘들었다. 제3대 [[대무신왕]]은 신하들을 불러 모아서 계책을 물었는데, 을두지는 당시 좌보 벼슬을 지내던 송옥구와 더불어 성을 지키면서 지구전을 전개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왕은 환도성으로 들어가 후한군과 대치하였다. 그러나 한군이 오랫동안 성을 포위한 채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을두지는 한군이 물러나지 않는 이유는 한군이 고구려의 땅이 척박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환도성의 물과 식량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나서는 한군에 사신을 보내 화해를 청하면서 물에서 나는 귀한 잉어와 수초, 맛 좋은 술 등을 보내주면 한군이 알아서 물러날 것이라며 계책을 말해 주었다. 대무신왕은 을두지가 알려준 계책을 따랐다. 당시 한군의 장수들은 고구려군이 오랫동안 성안에서 나오지 않고 뻐겨대자 초조해하던 참이었는데, 고구려 사신이 잉어와 수초, 술을 가져오자 성안에 아직도 물과 식량이 풍족하여 성을 빼앗기가 힘들다고 여기고는 화친을 받아들여 군사를 이끌고 물려났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을두지가 언급한 위나암성의 지형묘사[* “한나라 사람들은 우리가 암석 지대에 있어 물이 나오는 샘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포위하여 우리가 곤란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못의 잉어를 잡아서 수초로 싸고, 또한 약간의 맛 좋은 술을 준비하여 한나라 군사에게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漢人謂我巖石之地 無水泉 是以長圍 以待吾人之困 宜取池中鯉魚 包以水草 兼旨酒若干 致犒漢軍) 출처는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가 오늘날 [[오녀산성]]의 모습과 부합해 고구려의 집안 지역으로의 천도는 제10대 [[산상왕]]이 환도성으로 도읍을 옮긴 서기 209년(산상왕 13년)에 이루어졌[* 마침 《삼국사기》산상왕 2년 2월조에 환도성 초축 기사가 있다.]으며, 고구려 초기 위나암성은 환도성(산성자산성)이 아니라 오녀산성이라는 설이 있다.[* 노태돈, <고구려 초기의 천도에 관한 약간의 논의> (한국고대사학회, 2012)]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