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환빠 (문단 편집) === 확장주의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pds24.egloos.com/e0079724_4f69fc02b573e.jpg|width=100%]]}}}|| || {{{#000000 2008년경 [[역사 갤러리]]에서 환빠를 비꼬기 위해 만든 짤방.[* 이 짤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역갤이 일뽕들의 서식지가 아니었다. 환단고기 비판으로 유명한 [[초록불]]도 역갤에서 환빠들에게 시달린 일이 많았다.][br][[http://pds24.egloos.com/pds/201203/22/24/e0079724_4f69fc02b573e.jpg|(크게 보기)]]}}} || 골때리게도 실제 환빠들은 이미지 윗부분의 '환빠님들을 즐겁게 해드릴 정확한 자료'가 잘려나간 짤을 들고 다니면서 진짜 저렇다고 주장하는 데 쓰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환빠는 호주 대륙 등 오세아니아까지 과거 한민족의 영역이었다거나 그 흔적이 있다며 우기기도 한다. 더 심한 경우 남극까지 넣는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영락다물대통일도.gif|width=100%]]}}}|| || {{{#000000 고구려가 [[북극해]]에서 [[하이난 섬]]까지 지배했다는 내용의 지도.}}} || 이 사진처럼 환빠들은 시베리아까지 점령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 사진부터가 말이 안 된다. 왜 말이 안 되는지에 대해 설명하자면, 우선 북쪽 지역은 정말 척박한 땅이라 지배 및 행정을 위해 기본적으로 성립되어야 할 정착민(=농경 민족) 자체가 없었고 수렵, 유목으로 살 수밖에 없었다. 또한 화폐, 근대적 행정, 중앙집권 등이 탄탄히 자리잡지 않은 이상 [[캄차카 반도]], [[몽골]], [[알래스카]], [[산시성(산서성)|산서성]] 등의 통신조차 안 되는 먼 땅까지를 실효지배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만주 남부라면 몰라도 시베리아 등 북아시아를 점령했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어불성설]]이다. 물론 고구려, 발해가 점령하기도 한 연해주와 하바로프스크 등 외만주 지역도 아무르 강 하류도 역사적 의미로서의 시베리아에도 넓게 포함되는 경우도 있지만 적어도 시베리아 그 자체는 점령해서 지배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시베리아의 일부 또는 반을 점령했던 기마민족들([[돌궐]], [[위구르 칸국]], [[몽골 제국]], [[시비르 칸국]], [[카자흐 칸국]], [[준가르 칸국]][* 옛날에 세계사를 배운 사람은 알겠지만, '칸국'을 예전에는 '한국(汗國)'으로 표기했었다. 그래서 중증 환빠들은 '한국'이라는 한글 표기만 보고 '와 우리 위대한 한민족이 중앙아시아 벌판까지 진출했구나~'라는 망상을 품기 딱 좋았다.])의 유목 제국 시대에도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전쟁이 없었을 정도였고, 또한 전쟁이 일어나도 사람들이 적은 곳이다보니 반란이 일어날 경우 통신이 잘 알려지지 못하거나 늦게 알려지는 단점도 있었다. 그래도 전쟁이 잘 일어나지 않다 보니 실크로드의 한 갈래인 초원길이나 초피로(담비의 길) 등도 쓰여졌지만 척박하고 황량한 곳인만큼 교통이 잘 발전되지 못했고, 그나마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만 한정해서 무역로가 만들어졌었다. 시베리아 뿐 아니라 모든 아시아 북부를 점령한 근대시기의 [[루스 차르국]], [[제정 러시아]]조차 교통과 통신이 발전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드넓은 시베리아 지역을 통치하는데 힘들어했고, 러시아는 개척이 오래 걸렸던건 물론 땅이 너무 넓어 황량한 지형, 극도의 추위, 교통과 통신이 좋지 않다는 단점을 이용해 [[유배|유배지]]로 쓰거나, 정치범과 죄수들을 시베리아 개척에 보내 강제노동을 시켰으며, 소련 때는 수많은 [[굴라크]]들이 세워졌다. 시베리아는 아니지만 인근의 우랄과 러시아 극동 지역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러시아 극동지역도 그나마 사람들이 많이 살 수 있는 곳은 [[오호츠크 해]] 등 해안가가 있는 지역이었다. 더욱 북아시아는 고대 문명시대에는 지금보다 더 추웠고, 해당 지역의 추위에 적응되어 사는 소수의 원주민들이 아닌 이상 어느 문명을 가진 정착민들도 이곳을 점령해 지배할 수 없었다. 러시아의 경우는 교통과 통신이 나름 많이 발전된 근대시대인데다가(게다가 본격적인 개척을 넓히는 것은 더 늦게 일어났다) 옛날부터 추위에 적응되기도 해서 추위에 강했기에 가능했다. 하물며 [[조선]]시대에서도 만주에 대한 땅의 가치를 낮게 판단했었다. [[숙종(조선)|숙종]]이 남긴 생각 중에 만주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고구려보다 조선을 높게 평가했던 게 그들의 인식이었다. 숙종때 [[청나라]]와 [[백두산]]에 정계비를 세워 서위압록 동위토문이라는 경계선을 확립했고 토문강의 위치가 어디인지 170년 뒤에 문제되는 국경선 논란이 생긴다. 역으로 보면 170년 동안 변방 땅인 만주지역을 [[조선]]이나 [[청나라]]나 신경쓰지 않았던 것이다. 반대로 남쪽도 마찬가지로, 중국 남부는 지금의 동남아시아처럼 습하고 더위가 심했기에 고구려든 백제든 신라든 가야든 한반도 및 인근의 국가들은 절대로 정글같은 열대 무더위와 습도를 못 이겨냈다. 그리고 양쯔강 이남의 개척도 당장 빨리 이뤄진 게 아닌 오랫동안 시간이 걸렸다. 그러니 중국 남부라던가 동남아시아, 더 심하게는 오세아니아까지 점령했을 거라는 유사역사학지들의 주장은 당연히 거짓이다. '''고대 한민족의 강역을 터무니없이 크게 잡는다.''' 이는 일제가 주입하였던 만선사관을 기반으로 하여, [[신채호]]가 고대 중국 동해안에 존재하였던 [[동이|이족]] 국가들을 죄다 한민족이 식민된 것으로 보거나, [[최남선]]이 '붉·밝'의 음소 공유를 바탕으로 동북아 전체를 불함문화권으로 묶었던 데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런 주장들은 [[제국주의]] 그 자체를 극복한 것이 아닌 한민족 스스로를 제국시하여 그 범위를 확장시키는 논리에 지나지 않았고, 당연히 일제가 [[내선일체]], [[중일전쟁]], [[대동아공영권]]의 역사적 근거로 잘 이용해 먹었다. 급기야 이들은 [[신채호]]의 말처럼 "도깨비도 떠 옮기지 못한다는 땅을 떠 옮기는 재주를 부려"[* 신채호, 『[[조선상고사]]』, 제1편 제2장.]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가야]]를 모두 중국 대륙에 가져다놓는 [[대륙설]]과 같은 만행도 버젓이 저지르고, 이보다는 스케일이 작지만 고대의 요동은 사실 오늘날의 요서에 해당한다고 하면서 [[고조선]]을 [[평양]]이 아닌 요동에[* 다만 [[고조선]] 요동설은 환빠와는 별개로 실제로 근거가 있는 학설이다. [[고조선]] 항목 참조. 기원전 4세기 이후에 중심지를 요동에서 [[평양]]으로 옮겨갔다는 것이 주류설이다.], [[한사군]]도 요서에다가 가져다 놓음으로써 사실 한사군은 [[한반도]]에 없었고 고로 한반도는 신성불가침의 한민족 영토라고 자위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선비족]]이나 [[거란족]], [[몽골족]], 일본족이나 심지어 중국의 전설적인 삼황오제들까지 한민족으로부터 나온 지파들이라고 함으로써 한민족의 판도 안에 넣기도 하는데, 이는 아래의 기원주의로 연결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