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환온 (문단 편집) === 말년과 최후 === 환온은 베개를 어루만지며 동진의 황제가 될 야망을 꿈꾸었다. 이에 폐제 [[사마혁]]을 [[남색]]가 내지 고자로 몰아 폐위시키고[* 허나 환온의 무고와는 달리 폐제 사마혁에게는 이미 세 아이가 있었고, 폐위 이후에는 [[주색]]에 빠져 죽었다.], 나이 많은 [[진간문제|태종 간문제]] 사마욱을 옹립했다. 환온의 권세는 이미 황권을 넘어섰기에 자신이 황제가 되고자 했다. 동진의 숙원이었던 북벌을 일부나마 실현시킨 환온은 그 공으로 [[사마|대사마]](大司馬) 겸 대도독중외제군사(都督中外諸軍事)에 올라 364년에 이미 갖고 있었던 형주자사에서 양주자사(揚州刺史)로 전임이 되었고, 관중을 통치하던 양주자사(凉州刺史) [[사마훈]]이 반란을 일으키자 손쉽게 제압한 뒤 그 자리를 자신의 측근으로 교체했다. 369년에는 [[연주(중국)|연주]]자사 겸 [[서주]]자사를 더해 장강 하류의 모든 군사력을 수중에 넣었다. 여기에 자신의 정예 군대인 서부 군단을 합쳐 동진의 실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이때 환온의 친구인 동진의 명문 귀족 [[유담]](劉淡)이 가세했다. 당시 동진은 [[화북]] 지방으로부터 들어온 [[유민]](流民)과 [[화중]], [[화남]]의 원주민이 섞여 건국된 나라였다. 아직 [[강남(중국)|강남]]이 완전히 개발된 상태도 아니었는 데다가 북부의 한족 주민들이 특권을 받아 동진으로 유입되는 유민의 숫자가 증가하면서 호구조사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조세]]나 [[병역]]을 적절하게 부여하지 못하여 나라 꼴이 엉망이었다. 그래서 환온은 현재 거주지를 중심으로 [[호구]]조사를 실시했는데 이를 '''토단'''(土斷)이라고 했다. 동진 시기 100년 동안 토단은 약 아홉 차례 시행되었는데 환온이 대사마에 재직할 때 가장 거국적으로 실행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동진의 국력은 다시 재정비될 수 있었다. 이렇게 환온은 명망을 쌓고 간문제로부터 [[선양]]을 받으려고 했으나, 간문제는 환온의 야심을 간파하고 불안해하다가 급사해버렸다. 특히 [[사안(동진)|사안]][* [[비수대전]] 당시 태연하게 바둑을 두다가 사람들이 돌아가자 나막신이 부러지는 것도 모르고 기뻐했다는 그 사람이다. 이 일화만 보면 웃기는 사람 같지만 실은 당대의 명재상이자 명망높은 문화인이었다.]은 초연한 태도로 그를 제거하려던 환온의 의지를 꺾었고, 이에 간문제 사마욱이 붕어하자 열종 [[효무제(동진)|효무제]] 사마요가 즉위했다. 기이한 일화를 모으기 좋아한 《[[진서]]》의 <환온전>에는 이에 대해서 기이한 일화를 기록하고 있다. 환온의 말년에 갑자기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떤 [[비구니]]가 먼 곳에서 와서 시주로 삼고자 의탁했다. 이 비구니의 재주와 품행이 보통이 아니었기에 환온은 매우 공경스럽게 대했으며 집에서 거주하게 했다. 그런데 이 비구니가 매번 목욕할 때마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환온은 이를 의심하여 엿보았다. 환온이 그 모습을 보니 비구니는 [[나체]]로 칼을 휘둘러 배를 갈라 내장을 빼내고, 몸과 머리를 잘라 모두 작은 덩어리로 잘게 잘랐다. 환온은 이를 괴이하게 여기고 두려워하며 돌아갔다. 신비스럽게도 비구니가 욕실에서 나오는데 몸의 형태가 전과 같았다. 환온이 솔직하게 털어넣고 묻자 비구니가 답하기를 >"만약 군주를 축출하거나 능멸한다면 육신이 마땅히 보았던 것처럼 될 것입니다." 라고 했다. 이때 환온은 장차 찬위(問鼎)할 계책을 꾸미던 참이었는데 이를 듣고 한탄했다. 이후로 이를 경계로 삼아 종신토록 신하의 절개를 지켰다. 비구니는 뒤에 작별하고 떠났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이 일화는 환온이 찬탈의 마음을 품었지만 끝내 그 마음을 실행할 수 없었음을 뜻하는 일화이다. 또 《진서》 <환온전>은 그가 죽기 전 태종 간문제와 있었던 일화도 기록하고 있다. 열종 효무제 사마요가 즉위한 후 환온이 남주(南州)에서 돌아와 태종 간문제의 능을 배알했는데, 좌우에서 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환온이 이윽고 수레에 올라 시종에게 선제 간문제의 영령을 뵈었다고 말했는데, 선제가 했던 말을 하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다만 환온이 능을 배알할 때 자주 말하기를 >"신은 감당할 수 없사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을 뿐이었다. 환온이 또 좌우에 묻기를 은연(殷涓)의 모습을 물었는데 어떤 사람이 대답하길 >"은연이란 사람은 비대하고 단신이며 낯빛이 검고 매우 추합니다." 라고 했다. 환온이 이르기를 >"조금 전 그도 선제의 곁에 있는 것을 보았는데 용모가 또한 그러했다." 라며 불길하게 생각했다. 은호(殷浩)가 환온에게 폐해져 죽고 나서, 은연이 자못 절조가 있어 마침내 환온에게 이르지 않고 무릉왕 사마희와 사귀었다. 환온이 의심하고 그를 해했으나 끝내 인식하지 못했다. 이때에 이르러 은연을 보고 빌미가 돼 환온이 병에 걸렸다. 건강에서 14일을 머무르고 고숙에 돌아가 마침내 병상에 누워 일어나지 못했다. 이에 환온은 [[진효무제|효무제]] 사마요에게 [[구석]]을 요구하는 등 대놓고 찬탈을 꿈꿨지만 사안과 [[왕탄지]]가 반대하여 성공하지 못했다.사안과 왕탄지는 그가 위독함을 듣고 은밀히 선양을 늦추었다. 석문(錫文)이 아직 완성되지 못했는데 환온이 죽으니 향년 62세였다. 환온의 아들인 [[형주]]자사 [[환현]]은 결국 아버지의 야망을 실현하여 효무제의 아들 안제 [[사마덕종]]으로부터 선양을 받아 훗날 [[환초]]라고 불리는 [[초나라|초(楚)나라]] 황제가 되어 환온의 유지를 이었으나, 불과 3개월 만에 [[유유(송무제)|유유]]에게 반격을 받아 피살되고 말았다. 이후 유유는 동진을 찬탈하고, [[송(육조)|유송]]의 개국자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