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활리길사 (문단 편집) ==== 파직 ==== 활리길사는 권력을 잡은 뒤 개혁의 이면에서 재물을 탐했고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하지 않았다. 비위를 거스른 이들은 바로 옥에 가두거나 장형을 가했으니 모두 두려워 뇌물을 바쳐야 했다. 활리길사의 통역을 돕던 박홍도 권세를 등에 업고 뇌물을 받았다. 1301년 3월, 활리길사는 인민을 화합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파직됐고, 정동행성의 속관과 함께 원으로 돌아갔다. 원에서는 활리길사의 보고와 중서성의 논의를 종합해, 4월 산동동서도선위사 탑찰아(塔察兒)와 형부상서 왕태형을 고려에 보내 구법을 바꾸지 않는 선에서 폐습을 시정할 것을 요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