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활명수 (문단 편집) == 역사 == [[파일:활명수_역사.jpg]] 활명수 디자인의 변천사. 초기 활명수는 지금처럼 바로 음용가능한 방식이 아니라 원액을 물에 1~2시간 정도 희석시키는 과정이 필요한 터라 큰 병에 원액을 담아 판매했었다. 이후 미리 희석돼서 바로 음용가능한 지금의 활명수를 담은 작은 병이 출시되었고 원액을 담은 활명수와 바로 음용가능한 활명수가 판매되다 원액은 담은 활명수는 완전히 사라지고 지금의 형태로 굳어지게 되었다. [[아세틸살리실산|아스피린]]과 동갑인 약([age(1897-09-25)]년)으로, '''한국의 첫 번째 브랜드 상품'''이면서 '''최장수 브랜드'''라 할 수 있으며, 그 역사는 [[대한제국]]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1897년]] [[9월 25일]]로 [[10월 12일]]에 이루어진 제국 선포보다 보름 빠르다. 즉, 이 말은 (며칠 안되기는 하지만) '''조선시대 때부터 팔렸다는 의미다.''' 이 약의 등장이 특이한데, 창립자 민병호가 소화제를 만들어서 활명액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판것이 시작이었다. 당시의 레시피는 >[[계피]] 4g, [[정향]] 3g, 감복숭아([[살구]])씨 6g을 침출기에 넣고 [[적포도주]] 150g을 가해 잘 혼합한 다음 3일간 침출시킨 뒤, 이 침출액에 다시 [[멘톨|박하뇌]] 0.15g, [[장뇌]](dl-캄파) 0.03g을 넣고 백설탕 40g과 증류수 70g을 가한 후 잘 혼합해 용해한 후에 여과하면 완성. 민병호는 이 약의 제조 아이디어를 [[제중원]]에 있던 친구가 가르쳐준 서양의학에서 얻었다고 한다. 실제로도 [[포도주]], 백설탕, [[멘톨]], [[캄파]], [[클로로포름]] 등 사용 재료를 보면 [[한약]]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육두구[* 육두구의 원산지는 [[인도네시아]]이고, 고릿적부터 동양권에서 식용, 약용으로 쓰였다. 이미 당송 시대 문헌에 그 약효가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는데, 이때 [[유럽]]에는 육두구가 유입조차 되지 않았다. 이후 아랍 상인들을 거쳐 소량이 유럽으로 유입되다, [[대항해시대]] 이후에야 주요 교역품이 된다.], 박하는 [[한의학]]에서 오랫동안 사용된 약재이며, 정향과 복숭아씨(도인) 역시 마찬가지다. '교이'라 하여 약에 당분을 첨가하는 것과,[* 교이는 원래 강엿을 말하는 것이지만, 약 맛을 개선하고 당분을 공급하기 위해 넣기 때문에 현대에는 설탕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보며, 한국에서는 한약에 당분을 첨가하는 게 드물어졌지만 중국에서는 한약 처방에 흑설탕 등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약재를 술에 담가서 유효성분 추출을 돕는 제법[* 이를 주수상반(酒水相半)이라 한다.] 모두 한의학적으로 유구한 전통이다. 주종의 경우, 전통적으로는 [[황주(술)|황주]]와 같이 곡물을 이용한 [[양조주]]를 사용했으나, 기본 목적은 [[알코올]]을 이용하여 유효성분을 추출하는 것으로 현대에는 [[소주]]를 사용하기도 하므로 적포도주를 택했다고 하여 바로 서양약이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기본적인 베이스는 한약이고 거기에 서양의 생약 전통을 결합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실제로 [[동화약품]]에서도 민병호 선생이 궁중 비방에 서양의학을 접목시켜 개발한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특히, 오늘날에는 원방에 비해 창출, 후박, 진피 등이 추가돼 있는데, 이는 소화기 질환에 다용하는 한방 처방인 '평위산'의 영향이다. [[코카콜라]]와 같은 서구의 약제 음료들이 그러하듯이 탄산이 첨가되면서 지금의 까스활명수가 완성되었다. 초창기의 활명수는 당시 기준으로 상당한 고가품이었다. [[1910년]] 활명수 1병의 값은 40전이었는데, 당시의 쌀 1되는 약 10전이었다고 하니 요즘 가격으로 환산하면 약 2만 원 정도다.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6&mcate=M1046&nNewsNumb=20140113878&nidx=13879|#]] 다만, 초기형의 경우는 아무래도 인기를 끌다 보니 유사상품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고, 이름도 비슷하게 짓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에 동화약품이 혼동 방지를 위해서 만든 것이 바로 '''부채표'''. 이것 역시 한국 최초의 상표 등록이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역사의 한 면을 장식하기도 하였는데, 사장은 몇 차례 바뀌었지만, 당시 동화약품을 맡던 사장들[* 최초의 사장은 민병호의 아들 민강이었다. 민강이 40대의 나이로 사망하면서 사세가 기울어서 민강의 인척들이 잠시 운영을 하기도 하였으나 여전히 어려웠기 때문에, 역시 독립운동가이자 사회활동가였던 윤창식에게 넘어갔다.]이 [[독립운동가]]였던 덕분에 활명수를 팔아 번 돈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댈 수 있었다. 이때 동화약품 사옥 내에 [[상해임시정부]] 연락소인 연통부가 설치·운영되었다. 동화약품은 [[두산그룹]]에 비해 1년 늦게 생겼지만, 두산그룹은 해방기에 단절된 기간[* 1945년부터 약 1년간.]이 있어서 정통성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동화약품을 최장수 기업으로 꼽는다.[* 두산그룹은 이 단절 외에도 주력 업종을 몇 차례 바꾸었다. 그리고 이 시기 두산그룹의 행보는 창업주 [[박승직]]의 친일 행위(위안부 모집)와 당시 주력 상품이었던 [[박가분]]의 유독성(납) 등 논란거리로 가득하다. 때문에 두산그룹의 입장에서도 이 기간을 굳이 기업 역사에 포함시켜서 홍보하기 껄끄러울 듯.] 동화약품은 창립 때부터 2014년 5월 중순까지[* [[서울역]] stx빌딩으로 옮겼다.] 줄곧 같은 자리에서 같은 상호,[* 엄밀하게 따진다면 세세한 변경은 있었다. 그러나 사명의 골격만큼은 그대로여서 같은 상호로 쳐주는 게 보통.] 같은 업종, 같은 제품으로 크고 작은 역사를 써내려왔다. 동화약품이 사옥을 옮긴 것은 본사가 위치한 순화동이 재개발에 들어갔기는 하나, 본사 터 자체는 당사 소유지라 신사옥 완공 시 돌아올 계획이다. [[https://m.sedaily.com/NewsView/269PWOXTU8#cb|#]] 일반적으로 소화제라고만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육계]]나 고추틴크성분이 위를 자극하여 식욕을 증진하는 효과도 있고 한약 성분으로 인해 [[구토]] 시에 먹으면 속이 진정되는 효과도 있다. [[파일:아토마우스 활명수.jpg]] 2012년부터는 매년 디자이너나 아티스트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한정판 활명수를 만들고 있다. 2014년에도 역시 출시 117주년을 맞아 이동기 작가의 아토마우스 한정판을 내놓았다. 1병의 용량이 무려 450ml이다. --소화제 먹고 배부르겠다-- [[파일:카카오 활명수.jpg]] 2016년 10월에는 출시 119주년 한정판으로 [[카카오프렌즈]] 특별판을 출시했다. 많은 드링크 음료에서 보존을 목적으로 넣는 유해한 [[안식향산나트륨]](벤조산나트륨)이 들어있지 않다. 옛날에는 들어 있었으나, 유해성 때문에 현재는 첨가하지 않는다. 사족으로는, 광동제약의 소화제도 방부제가 없다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이름이 비슷한 삼성제약의 까스명수는 안식향산나트륨이 함유되어 있고, 동화약품에서 어린이용으로 만든 꼬마활명수도 벤조산나트륨이 함유되어 있다. 현재는 그 역사성을 인정 받아 서울 미래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장수막걸리]]와 비슷한 사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