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황도파 (문단 편집) == 몰락 == 아라키는 [[사이토 마코토|사이토 내각]]에서도 육군대신으로 유임되었지만, 무능하여 대장성과의 육군예산협상에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아라키가 무능으로 인해 육군성 내부의 인망을 잃는 가운데 참모본부에서도 마사키가 실권을 전횡하자 참모총장인 [[간인노미야 고토히토 친왕]]이 불쾌감을 가졌다. 한편 참모본부 제3부장 오바타는 제2부장 나가타와 대소, 대중 전략을 두고 대립하며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라키가 바람을 불어넣은 청년장교들은 하루빨리 제2유신을 단행하자고 밖에서 난리를 쳐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아라키는 1934년 술을 과음했다가 폐렴에 걸려 육군대신에서 사임한다. 그는 후임으로 마사키를 추천했지만 마사키의 독단에 질렸던 간인노미야 친왕이 비토하여 낙마하고 [[하야시 센주로]]가 육군대신이 되었다. 마사키는 하야시의 후임으로 교육총감이 되었다. 그 뒤 황도파 막료들은 중앙에서 야전으로 쫓겨나고, 동년 11월 [[츠지 마사노부]]가 황도파 청년장교들을 색출해 고발하는 육군사관학교 사건이 벌어지면서 통제파의 마사키 배제공작이 시작되었다. 이듬해 7월 마사키는 하야시와 간인노미야에 의해 강제로 경질되었고 와타나베 죠타로가 후임으로 임명된다. 이렇게 황도파의 장성급과 좌관급은 군부 중앙의 기반을 모두 잃었다. 이에 불만을 가진 위관급 황도파의 불만은 8월의 아이자와 사건과 이듬해 2월의 [[2.26 사건]]이라는 초대형 자폭을 터뜨리면서 황도파는 철저히 숙군되어 파벌로서 괴멸한다. 예편당하지 않고 현역에 남은 황도파 장교는 야마시타 등 극소수에 그쳤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