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황산대첩 (문단 편집) === [[이성계]], 드디어 출전하다 === || [[파일:external/oi67.tinypic.com/2vbrddf.jpg|width=230]] || || '''[[이성계]](李成桂)''' || 사근내역에 지방의 원수들이 집결하고 왜구와 싸우려고 하던 도중, 고려 조정에서는 이성계를 '''양광·전라·경상 삼도 순찰사(楊廣全羅慶尙三道巡察使)'''로 임명하니, 드디어 이성계는 고려 왜구 토벌군의 수장으로서 출전하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찬성사(贊成事) [[변안열]]을 도체찰사(都體察使)로 삼아 부장으로 하게 하고, 평리(評理) [[왕복명]](王福命)과 평리 [[우인열]], 우사(右使) [[도길부]](都吉敷), 지문하(知門下) [[박임종]](朴林宗), 상의(商議) [[홍인계]](洪仁桂), 밀직(密直) [[임성미]](林成味), 척산군(陟山君) [[이원계]]를 원수로 삼아 모두 이성계의 지휘를 받게 하였다. 승리를 위해 선별된 군대가 출진할 무렵, 흰 [[무지개]]가 마치 [[태양|해]]를 뚫는 듯한 모양새가 나오자 일관이 "싸움을 이길 징조다."면서 군대의 사기를 올렸다. 그런데 이렇게 군대의 사기를 올리려던 것도 잠시, 이성계가 도착하기도 전에 고려군은 사근내역 전투에서 참담한 피해를 입고 만다. 이성계의 군대가 이동하는 중에도 여기저기서 도륙된 시체들이 널려 있는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고, 그 참담한 모습을 본 이성계는 경험 많은 장수임에도 불구하고, 측은하고도 분한 마음에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했다고 한다. 이렇게 시체로 늘어진 길을 지나 이성계의 군대는 [[남원]](南原)에 도착했는데, 왜구와 120여 리 정도의 거리를 두고 대치하고 있던 고려군의 [[배극렴]] 등은 이성계의 군대를 보고 대단히 기뻐했다. 앞선 전투에서 패배하여 군대의 사기가 말이 아니었을 텐데 다행히 지원군이 도착했으니 군대가 다시 힘을 얻은 것은 당연한 것. 그런데 이성계는 도착하자마자 '''"오늘은 쉬고 내일 곧바로 싸운다."''' 고 작전을 정했고, 여타 장수들은 "적군이 험지에 들어가서 지금 싸우면 힘듭니다. 좀 기다렸다 나오면 싸웁시다." 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이성계는 되려 화를 내며 '''"내가 한스럽게 여기는 것은 적을 보지 못하는 것밖에 없는데, 이제 적을 봤는데 싸우지 말라고? [[김두한(야인시대)|개소리 집어쳐!]]"''' 라며 소리쳤고, 고려군은 지원군이 도착한 다음 날 바로 적군과 교전하기 위하여 움직이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