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황산벌(영화) (문단 편집) == 여담 == [youtube(6KxAe56hjNc)] *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오는 OST인 김세준의 야야야가 꽤나 명곡이다. 참고로 부른 사람은 배우 김세준이 아닌 동명이인이다. * 복식이나 무기면에서는 조금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우선 작중 백제군과 신라군이 쓰는 칼이 모두 엑스칼리버처럼 생겼다. 삼국시대에는 대체로 [[환두대도]]를 사용했다. 갑옷은 신라군이든 백제군이든 고증에 그렇게 맞지는 않는것 같아보인다.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는 찰갑을 주로 썼는데, 백제는 철갑, 신라는 가죽이 갑옷의 주소재인 것으로 묘사된다. 그렇지만 백제의 관복과 의자왕의 의상과 고구려 연개소문의 철갑 갑옷은 어느 정도 틀에 부합하는것처럼 보이나 백제 왕자들의 관모(모자)장식에 은색 장식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또 백제의 상징을 봉황으로 선정해놓은 것까지는 좋았으나 신라의 국기를 천마로 지정해놓는 것은 부정확하다. 우선 천마총에서 발견된 천마도(벽화인 것같지만 사실 안장에 그려진 그림)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 같지만 사실 역사학자들은 이 그림이 천마인지 기린인지 아직도 논쟁중이다. 그리고 신라는 계림국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닭이나 계룡을 신성시 여겼고 심지어는 미추왕릉으로 추정되는 묘에서 계룡모양새의 유물이 발견됐다. 그럴거면 차라리 계룡이나 닭을 국기에 형상화 시키는 게 더 나았을거라는 의견도 있다. * 식문화분야까지 범위를 넓혀보자면 작중에서 '''[[옥수수]]'''가 등장하는 오류까지 있다.[* 계백의 자식들이 옥수수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옥수수는 아직 유라시아에 전래되기 한참 전인데다가[* 옥수수가 유럽에 전래된 건 [[콜럼버스의 교환]]이 이루어진 시기이고, 한반도에서는 조선 시대에 (정확히는 16세기쯤에) 명나라에서 전래되었다고 알려졌다.] 작중 시간대 기준으로 옥수수의 모습은 오늘날의 통통한 옥수수의 모습이 아니라 [[강아지풀]] 같은 모습에 가까웠다. 즉, 옥수수의 조상뻘되는 식물인 [[옥수수#s-3|테오신테]](Teosinte)이다. 오늘날의 옥수수의 모습은 12세기쯤에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 작중 내내 김유신은 당나라 측 인물들과 김춘추에게 유독 까칠한 모습을 보이며 반목하는데, 실제로 김유신은 김춘추와 달리 당을 경계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당나라군이 백제를 멸망시킨 뒤 사비성 근처에 진영을 설치하고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자 다미공이라는 인물이 신라군을 백제군으로 변장시켜 당나라를 공격하자는 계책을 내놓는데, 김유신은 "이 말은 취할 만 하니 마땅히 따르소서." 라고 동의했지만 김춘추는 이를 거절했다. * 극 초반부 삼자대면에서 연개소문(이원종)이 "쿠데타"라는 단어를 쓰는데 쿠데타의 어원은 프랑스어다. 엄격하게 따지자면 현대 한국인들이 구사하는 어휘는 당시와 확연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그냥 이 경우는 관객들에게 친숙한 어휘 + 코미디를 표방한다는 의지로 사용한 듯하다. 마찬가지로 의자왕이 553년 운운하는 것도 서력기원으로, 관객들이 쉽게 알아듣게 하기 위한 장치. 사실 극중 '쇼부'도 등장한다. 의자왕이 계백에게 버티라고 하며 버티고 있으면 소정방과 쇼부를 쳐보겠다고 한다. * 극 초반 사비성에서 백제 좌평과 우평이 군사회의를 할 때 [[인천광역시|인천]]이라고 말하는데, 삼국시대에는 인천이 아니라 ''''[[미추홀]]''''이라고 불렀다. 근데 이 영화에서는 사비성이나 웅진성, 기벌포같은 지명을 제외하고는 거의 현대 지명을 그대로 쓰기 때문에 따지는 게 별 의미가 없다. 거시기의 출신지가 [[조선시대]]까지 존재했다가 각각 순천과 보성에 분할병합된 [[낙안군]]의 당시 지명인 분차군([[낙안읍성]]의 그 낙안이다.)이 아니라 [[보성군|보성]] [[벌교읍|벌교]][* 보성군 벌교읍은 원래 낙안군 소속이었다. 참고로 낙안읍 지역은 순천시로 병합됐는데 현재는 낙안면으로 떨어진 상태다.]로 나오거나 영화 초반에 의자왕이 성왕이 죽은 곳을 [[관산성 전투|관산성]]이라 하지 않고 [[옥천]]이라고 언급하는 걸 보면... [[대동강]]을 패수라는 당대 이름을 쓰지 않고 그대로 대동강으로 쓴 것도 있고. * 후반부 전투 장면은 [[반전]]으로까지 여겨지게 된다. 우리가 잘 아는 역사극에서 장수들이 [[무쌍난무]]를 하는 모습은 여기서 나오지 않는다. 맨 처음의 맞짱도 한국에 맞게 화살을 쏘고 중반에 나오는 맞짱도 개그로 끝난다. 맞짱 때 신라군 장수가 칼 들고 달려들자, 백제군 장수는 미소를 지으면서 여유있게 칼을 뽑으려 하는데 잘 뽑히지 않아서 손잡이를 부여잡은 채 어쩔 줄 몰라 한다. 결국 마지막에 겨우 빼기는 하는데, 그 빼는 순간 손잡이에 신라군 장수가 얻어맞아서 끝이다. 장수들이 작전을 짜고 병사들의 사기를 고취시키지만, 전장에서는 뒤에서 지휘만 할 뿐이다. 이 부분은 오히려 [[고증]]이 잘 된 것이다. * 영화의 분위기가 코미디에서 처절한 전쟁으로 반전되면서 등장인물의 언동도 완전히 바뀌게 된다. 대표적으로 김유신의 동생인 김흠순이 있는데, 전반부에서는 비음이 섞인 목소리로 말하거나 별 의미가 없는 거시기의 의미를 알아내려는 촌극을 보이는 반면에, '''제 자식을 죽으라고 보낸 뒤에는''' 진지하게 변한다. 김유신이 계속 화랑들을 보내라고 명령하자, 이가 갈리는 목소리로 "행님 니 미칬나?"가 대표적. * 중반부의 인간 장기는 영화의 [[백미]]다. 장수들의 수싸움으로 인해 [[고기방패|병사들이 어떻게 개죽음을 당하면서 희생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실 이 부분에서 영화의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한다. 인간 장기를 두는 김유신과 계백을 [[플레이어]]로 장기말이 된 병사들을 [[스타크래프트]]의 유닛으로 대입하면 의미심장하게 해석될 수도 있다. * 인간 장기 장면에 옥의 티가 있는데, 마, 상, 차가 각각 셋씩 나온다. 정리해 보면 계백의 마(馬)/상(象)/차(車), 김유신의 상(象)이 셋이다. 계백의 마가 셋인 것은 마 둘이 잡혔는데도 계백의 마가 김유신의 말을 잡은 것에서 확인 가능. 상이 셋인 것은 계백이 멍이야를 부를 때 사(士) 옆에 상이 하나 있는 것으로 확인 가능. 김유신의 상도 둘이 잡혔는데 또 다른 상이 상장을 친다. 차의 경우 하나가 잡혔고 김유신이 상장을 칠 때 계백 쪽 구석에 차가 뻔히 있는데도 상을 잡으러 오는 게 또 다른 차. 잡힌 차까지 합쳐서 세 개다. 이하 공격 → 잡힌 병사 순서. 김유신 象 → 계백 兵 계백 兵 → 김유신 象 김유신 馬 → 계백 象 계백 包 → 김유신 馬 계백 象 → 김유신 ? 김유신 馬 → 계백 車 김유신 馬 → 계백 馬 김유신 車 → 계백 包 김유신 ? → 계백 象 김유신 包 → 계백 馬 계백 馬 → 김유신 象 계백 車 → 김유신 象, 외통수. * 인간 장기가 영화 분위기 반전의 시작이라면 본격적인 반전은 화랑들의 자살 돌격부터 진행된다. 김흠순의 아들이자 화랑인 반굴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계백이 나오라고 소리치다 창에 맞아서 허무하게 전사하고, 김품일의 아들인 관창은 사로잡혀서 약간의 심문 끝에 김유신의 작전에 말려들지 않으려는 계백의 판단으로 인해 강제로 돌려보내진다. 이에 김품일은 대노해서 관창을 때리고, 다시 사로잡힌 관창이 악에 받혀서 "니는 누가 시켜서 니 가족을 몰살시켰는갑제? 으이?" 계백에게 소리치는걸로 절정을 찍는다.[* 다만 이런 말을 들은 계백은 잠시나마 굉장히 안쓰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이내 결심한듯한 표정으로 '좋아. 김유신. 핥아주자'라 말하며 관창의 목을 치라고 명령한다. 어차피 또 살려서 돌려보내줘도 (김유신이) 또다시 죽으라고 내몰께 뻔하고 그로인해 관창만 더 비참해지기 때문에 남은 명예라도 지켜주기 위해 죽여준 것.] * 전투에서 병사들은 밀고 죽을 때까지 때리고 도망치고 울고 불고 하면서 처절하게 싸운다. 말 위에서 한 대 때리면 누가 맞고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보통 사극과는 다른 것이다. 주로 당하는 쪽인 백제 병사들의 처절한 모습이 많이 보이지만, 그저 사기를 올리기 위해 출진해 죽어가는 화랑들과 퇴로가 막혀 본대와 고립되어 백제군에게 처참하게 살육당하는 신라의 선발대의 모습도 처절하기 그지 없다. 근데 이 장면에서 엑스트라들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비장한 전쟁답지 못하게 다들 대충 싸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따지고 보면 죽기 싫은 상황에서 공포감으로 몸을 사려야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 전투 장면도 종래의 전쟁 영화처럼 영광스럽거나 비장하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포위당한 신라군 선봉대를 참살하는 백제군이나, 김유신의 계략에 갑옷이 무력화된 백제군을 몰살하는 신라군 본대처럼) 승세를 잡은 쪽이 지는 쪽을 일방적으로 살육하는 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전투 장면에서의 음악도 인생무상이 느껴지는 씁쓸한 음색이다. * 이쯤 가면 개그나 다름 없던 사투리조차도 중서들의 처절함을 강조하는 도구로 쓰이게 된다. 신라와 백제 양군의 처절한 전투 장면과 사방에서 들려오는 울부짖음, 그리고 백제군의 대다수가 신라군에게 살해당하고 전투가 거의 종결될 무렵 계백이 [[거시기#s-2|이름도 모르는 병사 하나]]를 탈출시키는 장면은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명장면이다. * 굳이 백제의 중심부였던 충청도가 아닌 전라도 사투리를 소재로 한 것, 신라는 그저 쌀배달꾼이었던 것, 무식하게 싸우는 계백에 비해 온갖 잔머리를 굴리는 김유신의 모습[* "계백이 갸~ 작전? 그른게 어뎃노? 계백이 금마 작전은 그냥 열씨미 싸우는거데이. 맨날 행님 니 혼자 잔머리쓰다가 깨진 거 아이가?" 대사가 나온다.] 등을 보면 무게 중심이 백제, 나아가서 지역감정에 피해를 입은 전라도 쪽에 두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신라의 사정도 충분히 대변해준다. * 신라가 살아남아야 되기에 당나라와 편을 먹은 것부터 그렇기에 당나라에서 받는 차별, 당나라에 빌붙은 자가 오히려 신라를 더 무시하는 것,[* 실제 김인문은 신라의 왕을 시켜준다는 것도 거부하는 등 신라인으로서의 자세는 지켰다고 한다.] 그걸 통해 김유신이 계속 열폭하는 모습을 통해 신라에게도 그만한 사정이 있었다는 걸 보여준다. 김유신이 소정방에게 칼을 들이대는 장면은 이런 약소국의 자존심과 나아갈 길을 보여준다. 결론을 말하자면, 상당히 중립적인 태도로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키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 영화 종반부에서 소정방이 의자왕의 처분 등 기타 백제전투의 전후처리 협상을 자기 멋대로 하자 격노한 김유신이 '''"이딴 식으로 할 거면 고구려보다 너희 당나라를 먼저 치겠다"'''라 일갈하는 장면은 실제 역사와 비슷하다. 엄밀히 말하면, 소정방에게 직접 일갈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642694&categoryId=49615&cid=49615|삼국사기 신라본기 태종 무열왕조]]를 보면 소정방이 신라군이 약속한 날짜에 늦었다는 이유로 신라 장수 김문영을 처형하려 하고, 그에 분개한 김유신은 신라군에게 '먼저 당나라 병사와 결전을 치른 뒤 백제를 깨뜨리겠다' 라 하며 칼도 아니고 무려 '''도끼'''를 들고 당군 진영으로 쳐들어갔다. 그를 본 당군 장수 하나가 소정방에게 '신라 쟤네들, 낌새가 이상한데요?' 라고 고했고, 그러자 소정방은 신라 장수를 풀어주었다. * 영화에서는 신라군 최고 지휘부인 [[김유신]]과 태자 김법민(훗날 [[문무왕]])이 갈등하는 양상을 묘사되기도 하였다. 이를 통해 [[경주 김씨|신라계 진골]]과 [[김해 김씨|가야계 진골(신김씨)]] 간의 있었던 내부 갈등을 묘사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유신의 부모가 결혼하는 과정에서 볼 수 있든 가야계에 대한 차별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개빼따구 드립이 그걸 나타낸 것이다. 다만 김유신과 김춘추계의 사이는 다르게 봐야 될 부분이다. 김유신과 태자 법민은 외삼촌과 조카 관계로 김유신의 누이 김문희가 문무왕의 모친이다. 친가로 신라 진골, 외가로 가야계 진골의 피를 물려받았던 문무왕은 즉위후 외가인 가야계 진골 집안의 권위 향상에 신경을 썼는데, 특히 김유신 사후 외삼촌을 흥무대왕(興武大王)에 추존하여 왕으로 격상시켰다. * 위의 갈등 관련하여 태자 김법민의 성장을 보여주려 했다는 것도 있다. 계속해서 공격을 촉구하는 김법민에게 김유신은 시종일관 전쟁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으로 보는 식의 말을 한다. 총공겨억~! 드립은 이를 한 방에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전쟁에 대해 알고 성장을 이뤄낸 김법민은 영화 말미에 무열왕에게 아버지는 빠지고 당은 나하고 대장군이 맡겠다는 말까지 하게될 정도로 성장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문무왕은 나당전쟁의 승리로 신라의 삼국통일을 최종적으로 완성시킨 왕이 되었다. * 이 영화의 사투리는 현실을 그대로 재현한 것은 아니다. 물론 고구려어, 백제어, 신라어가 차이가 있었고 그 차이가 (전혀 다른 말 정도는 아닌) 사투리에 가까웠을 것이란 것이 정설이다. 지금의 사투리는 [[조선]][[조선시대|시대]] 부터 생긴 것으로, 어떻게 보면 "더빙판"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마치 고대 이집트어를 영어로 번안한 [[십계]]나 [[이집트 왕자]]처럼 말이다. 거기에 중국어 역시 당시 쓰던 언어는 [[중고한어|중세 중국어]]로 현재 쓰는 [[북경어]]랑은 발음이 거리가 멀다. 물론, 당시의 모습을 살리는 것은 이런 사투리 대사로 더욱 성공했다.[* [[순정만화]] [[리젠드]]에서도 비슷한 수법을 쓰기는 했지만 묻혀버렸다.] 해학과 고증을 모두 성취한 것이다. * [[지역감정]]이 삼국시대부터 생긴 것인양 오해를 할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실제로 지역감정은 1969년 [[신민당(1967년)|신민당]]과 3선개헌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가 '''"[[영남]]은 고속도로까지 개설하는 정부가 [[호남선]]은 복선마저 제대로 않고 푸대접 하고 있다. 경상도정권을 타도하자"'''라 주장한 것과 [[박정희]] 정권이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을 견제하고자 '''신라 대통령론'''을 내세우며 호남권에 대한 지역감정을 조장한 이후 조금씩 갈등이 생기다가 [[1987년]] [[6월 민주 항쟁]] 이후 지역당 체제[* [[대경권|TK]] - [[민주정의당]], [[부울경]] - [[통일민주당]], [[전라도|호남]] - [[평화민주당]], [[충청]] - [[신민주공화당]]]가 성립하고, 이어 [[3당 야합]]으로 [[민주자유당]]이 탄생하여 호남이 정치적으로 고립되면서 고착화된 최근의 유산이다.[* 차라리 전근대 시기부터 꾸준히 이어져 오는 지역갈등은 [[서울특별시|서울]]([[경인(지역)|경기권]])-[[평양시|평양]]([[평안도|서북권]]) 간 관계이다. 이쪽은 고려 때 [[묘청의 난|개경파와 서경파로 나뉘어 권력 투쟁을 벌였던 것]]에서부터 근원을 찾을 수 있고, 조선 후기에는 조정의 서북민에 대한 차별로 [[홍경래의 난]]이 벌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구한말|한말]]에는 서북지역을 중심으로 [[개신교]]가 널리 전파되고 상업이 발달하면서 기존의 조선 관료 사회를 장악했던 서울-경기권과 경쟁하였고, [[일제강점기|일제 시대]]에도 [[경성부]]-[[평양]] 간 갈등은 독립운동 뿐만 아니라 일반 민중들에게도 적용되었다. '''심지어, 이는 현대에 들어서서 [[냉전|이념갈등]]과 [[한국전쟁|군사적 충돌]] 및 [[군사분계선|대립]]까지 합쳐지면서 오늘날 [[남북관계]]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백제의 중심지는 멸망할 때까지 [[경기도]]-[[충청도]] 일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백제가 건국된 이후 약 470년 동안 수도는 한강 유역의 [[위례성]]이었고, 고구려의 대공세에 경기도 일원을 실함한 이후 문주왕 시대에 웅진(충청도 공주)으로 천도했다가 성왕 대에 [[사비성]](충청도 부여)으로 다시 천도, 그곳에서 멸망을 맞이한다. 한편 '''[[전라도]](특히 영산강 유역)는 마한 세력만의 독특한 지방색을 가지고 있었으며 단 한번도 백제의 중심지가 된 적이 없었다.''' 현대에 사료상으로 확인되는 것은 <관세음응험기> 등에 [[무왕(백제)|무왕]]이 익산으로 추정되는 지역으로 천도했다고 한 것과 [[견훤]]이 거병 시에 백제가 금마산(익산)에서 개국했다고 한 것 정도가 떡밥이지만 당대의 정사 사료에는 그런 거 없다. 이상의 사료에 대해 익산이 부수도였거나 일종의 신도시 같은 개념이었다고 보기도 하지만 백제 멸망 당시에도 정사 사료에서 확인되는 백제의 수도는 여전히 사비(부여)였다. 전투 전에 김유신이 뻐꾸기들을 이용해서 백제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키는 부분은 지역감정이라기 보다도 전투를 위한 밑작업이라 보는 편이 타당하다. >이게 다 백제놈들 때문 아잉교. - 저 백제 문디 새끼들하곤 같은 하늘 아래 몬 산다. >우리 신라와 백제는 원래부터 '''뿌리가 다르다 아이가. 조상이 다르다''' 이 말이다. >글마들 말투가 그게 뭐꼬. 거시기가 뭐고! '''갸들은 응큼하데이. 속을 알 수가 없다 이 말이다.''' >이 좁은 땅에서 우리 후손들이 편하게 살려면 한 쪽은 망해야 하는 기야. '''밟을 때는 확실히 밟아야 하는 거거든.''' 그래야 못 개기지. 안 그러면 우리는 두고두고 골치 아프데이. * 영화에서 충청도 병사가 딱 한번 나온다. 이유는 '''[[충청 방언|너무 말이 느려서]].''' "있잖여유~" 다만 이는 [[충청도 사투리]]에 대한 오해이고 실제로는 이렇게 느리지 않으며, 설령 느리다 하더라도 말 자체를 상당히 축약하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 일례로 우스개소리로 나오는 "[[아부지 돌 굴러가유|있자나유~ 아부지~ 돌~굴러와유~ 위험행기로 얼릉 피하셔유~]]"는 "압지 피햐!" 로 압축이 가능하며, 이는 실제로도 흔히 쓰이는 표현이다. * 영화의 핵심인 [[거시기]]가 의미하는 것은 즉 '''"머시기 헐 때꺼정 갑옷을 거시기한다."'''는 매우 단순하게도 '''승리하기 전(혹은 죽기 전)까지 갑옷을 벗지 않는다.''' 신라군은 이 생소한 말에 쓸데없이 머리를 굴린다. 이 거시기의 뜻을 알아내려고 현존하는 한자 중 거,시,기 세 글자를 모조리 뒤져 그럴듯한 말을 찾아내려고 하기까지 한다.[* “현존하는 한자 중엔 '거'자가 77개, '시'자가 89개, '기'자 176개가 있심더. 이 글자들을 조합해보면……. '''모두 1,206,128가지의 '거시기''''(...)가 존재합니더”] 인간장기 중간 때까지만 해도 김유신은 계백을 설득해서 백제군과의 마찰을 피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지휘관의 명령으로 어떤 결과가 초래할진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거시기 할 때까지가 '지원군이 올 때까지'인지, '양동작전이 성공할 때까지'인지, 원래 의미인 '죽을 때까진/승리할 때까진'인지 매우 애매모호하기 때문에 신라로선 헷갈려 미치는 판이니...이걸 또 [[한자]]를 조합해서 해석하려는 암호해독관의 노력이 참으로 볼만하다.[* 암호해독관이 막대기를 들고 거시기와 머시기를 해독하는 장면에서 배경음악으로 수능 영어 듣기평가가 시작할 때 나오는 [[루이지 보케리니]]의 [[미뉴에트]] E장조가 흘러나온다. 물론, 관객들은 영화 초반에 계백이 부하들에게 명령하는걸 봤으니 알고 있다.] 그리고 인간장기 대결에서 그 뜻을 겨우 알아낸 김유신은 반굴과 관창을 포함한 화랑들을 자살돌격 시켜서 신라군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는 동시에 백제군의 정신상태를 약간 흔들리게 만든다. 결국 마지막에 진흙을 던져서 갑옷을 스스로 벗게 만들어 백제군을 약화시키고 전멸시킨다. 우리는 여기서 사소한 정보라도 한순간의 반전을 가져올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에서 계백은 백제 병사들의 결의를 고취시키기 위해서 전투가 끝날 때까지 갑옷을 벗지말라고 하고 그 결의를 유지하기 위해 갑옷을 옷에 꿰매 버렸다. 문제는 김유신과 인간장기를 둘 때 이 사실을 계백이 김유신에게 말해버렸고, 김유신은 백제군이 갑옷을 하나로 꿰맸다는 사실을 알고는, 신라군 선봉대가 백제군과 뒤섞여서 싸울 때 투석기로 진흙덩어리들을 날려버린다. 갑옷이 진흙덤벅이 된 탓에 백제군은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고, 갑옷을 옷에 꿰매서 한쪽을 벗으면 갑옷 전체는 물론이고 겉옷까지 다 벗어야 했다. 이 때문에 갑옷 없이 다음 싸움을 벌여야 했던 백제군은 사소한 칼질에도 살갖이 터져서 부상과 고통에 제대로 싸울 수 없었다. (사실 갑옷의 주목적이 이것으로, 온몸에 힘을 실어 창으로 뚫는다면 모를까, 베기로는 웬만한 갑옷도 못 뚫고, 이것만으로도 병사들은 상당히 안전하게 전투에 임할 수 있게 해준다.) 백제군 장군들은 깡으로 갑옷을 입고 전투에 임하지만, (진흙의 무게 때문에) 몸이 굼떠지는 바람에 싸우다가 하나둘씩 죽어가게 된다.] * 양군의 응원전 또한 감상 포인트다. 쾌지나칭칭나네~. 뱃놀이 나간다~. * 그리고 거시기는 맨 마지막에 홀로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한 백제인 병사[* 그리고 이 병사(이문식 분)가 어머니와 상봉하는 장면으로 끝나는데, 어머니역이 '''[[전원주]]'''. 영화가 개봉하던 무렵의 통신사의 CF를 패러디했다. 영화 개봉당시 유행하던 것을 패러디한 부분이 여기저기 들어가 있어서 시간이 흐른 지금 보면 과장되거나 쓸데없는 부분처럼 보이기도 한다.]가 계백에게 자신의 이름을 대충 둘러댄 일종의 가명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병사의 이름이 정말로 '거시기'인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가명.''' 자세한 것은 [[거시기#s-2]] 항목의 4번 참조. * 마지막에 창고안에서 계백 장군이 거시기에게 '난 자네를 남기고 싶다'라는 장면에서 아주 잘 들으면 바깥에서 '''"계백이 니 거 안에서 뭐하노!! 안 싸울끼가?! 퍼뜩 나온나!!"''' 라고 신라군의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는게 들린다. 계백과 거시기의 대화, 그리고 음악소리에 묻혀 잘 안들린다. 다만 억양과 발음으로 볼때 김유신의 동생인 김흠순으로 보인다. * 백제 측에서 [[보성군|보성]], [[벌교읍|벌교]] 사람들을 불러서 신라 병사들에게 욕 공격을 시전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덕에 담당 감독이 [[고소미]]를 먹어야만 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0040011|뉴스]]) 결국 개봉 후에 판매된 DVD에는 처음 화면에 '특정 지역을 비하하려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찍혀서 나오게 되었다. 참고로 굳이 '주먹 자랑하지 마라'라는 말로 유명한 벌교를 언급하는 것 또한 작중에서 백제가 충청도가 아닌 전라도 위주로 묘사된 것처럼 현실풍자에 더 가깝다. * 놓치기 쉬운 장면이지만, 초반부 백제가 보낸 첩자 씬에서 사극에 흔히 등장하는 지리에 통달한 백성/군사들이라는 클리셰를 깨부수는 장면이 등장한다. 백제 첩자들이 먼저 신라군 목표가 고구려인지 백제인지 떠보려 하자 누워있던 형님 병사가 "야, 임마 우리(같은 징집된 일개 병사)가 백제랑 고구려랑 그 뭔 상관이고? 어. 언제 글마들(장군들)이 요짝으로 갈까요하고 (우리 병사들한테) 허락받고 가드나? 자슥"이라며 깐다. 이후 첩자가 목적지가 백제는 아닐꺼 같다 말하면서 '백제 갈라믄 탄현 지나서 황산벌 거쳐가면 금방인데, 골 비었다고 이까지 기어올라오겠는교?'라며 운을 띄우자 옆자리의 신라 병사가 '아이고, 문디. 지리가 빠삭하네예? 라고 반문한다. 이에 첩자가 괜히 찔려서 "어데예, 얼라들도 다 아는 얘기 아닌교?"라고하자 주변 신라 병사들이 어리둥절해하며 '내는 몰랐는데? 형님은 알았나?' /(옆자리 형님 병사가) '내도 몰랐는데? 야, 임마 신라 사람이 백제길을 우찌 알끼고. 새꺄. 말도 안 되는 소리하고 있노. 새꺄'라는 현실적인 반응을 보이며 또 깐다. 그러자 첩자는 당황해 하는 장면이 인상적. 이 첩자들을 연기한 배우는 [[신현준]]과 [[김승우]]이다. 참고로 이 둘은 그냥 친구인 [[박중훈]] 보러 촬영장 구경 왔다가 카메오출연을 제의 받게 되었는데,[* 신현준은 이전에 박중훈이 주연을 맡은 '불후의 명작'에도 카메오로 출연한다. 답례로 손목시계를 받았는데, 황산벌에서는 추어탕 한그릇을 얻어먹었다.] 단역을 예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수락했다가 무려 23컷짜리 콘티를 받고 이건 사기야! 를 외치며 밤새도록 촬영해야 했다고... 심지어 둘 다 [[서울특별시]] 출신인데 전라도 사투리와 경상도 사투리 양쪽을 다 연기해야 했다. * 계백이 전투에 패해서 부상을 입고 김유신을 만날 때 계백은 한과 울분과 억울함 등등 눈물을 머금고 김유신을 바라보고 그런 김유신은 그를 같은 장수로서 동정한다. 이 때, 김유신이 죽어가는 계백을 바라보면서 '''"와 이리 덥노...?"'''[* "이제는 전쟁도 끝났고 우리 신라가 이겼으니 갑옷을 벗고 편히 저승으로 가달라" 는 뜻으로 해석된다. 마침 황산벌 전투는 한여름인 음력 7월에 벌어진 전투였다.]라고 말을 건네자 계백은 '''"겁나게 덥구마잉..."'''라고 대답한다. "와 이리 덥노?" 는 계백과 김유신이 장기를 둘 때 김유신이 의도치 않게 '거시기'의 의미를 파악할 때 던졌던 질문이다. 그 때는 계백이 "거시기 하기 전엔 절대 못벗제!" 라고 당차게 대답했지만, 지금은 패배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김유신의 말에 담담히 동의하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정진영, 박중훈 두 배우의 열연이 어우러져서 영화를 보는 관객이 슬퍼지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명장면이다. 신라 측에서도 그저 전쟁광인양 정복에 미쳐있는 것은 아니고 그들 또한 사람인 것을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 사실 영화 황산벌 이전에 황산벌 전투를 배경에서 서로 사투리로 대화한 방송이 있었다. 1990년대 SBS에서 토요일 저녁에 방송한 코미디 프로그램인데 같은 장면을 표준어를 쓰는 진지한 버전과 사투리를 쓰는 코믹한 버전으로 나누는 코너였다. 계백과 관창의 대화와 대결도 표준어 버전과 각자 사투리 버전 대화 버전으로 나왔다. 계백 역은 실제로 전라남도 출신인 개그맨 [[김병조]]가 맡아서 전라도 사투리를 썼는데, 영화와 같은 사투리 고증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이후 조금 더 리얼한 사투리 개그가 하나 등장했는데, SBS 에서 진행한 코미디 프로의 한 코너였던 [[https://youtu.be/ZST_J6TS5GU?t=579|'''백제본기''']]가 그것. 백제 왕으로는 최양락이 나왔고[* 최양락의 약력을 참고할 때. SBS의 코미디 펀치펀치의 한 코너가 아닌가 추측된다.], 충청도 출신 개그맨들이 주로 등장했다. 여기서 백제왕실은 철저하게 충청도 사투리를 사용했는데, 이를테면 사극에서 대전에 왕이 들어올 때 내관들이 하는 대사인 "주상전하 납시오"를 "대왕마마 들어와~유~"라든가, "즈언하~ 죽여주시옵소서"를 "즈언하~ 죽여줘유~" 정도로 바꾼다든가. 거기다 고구려 사신으로 등장하는 개그맨 김종국은 평안도 사투리를, 신라 사신 김은우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고, 그걸 중간에 통역관이 받아서 충청도 사투리로 전달하는 등 제대로 개그요소가 폭발했던 작품이었다. SBS판 [[고전해학극장]]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대중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다. 또 알려졌다고 해도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그저 "거, 개그맨들이 참신하네. 저런 생각을 다 하고" 정도로 끝나는 것이라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한 것도 있다. 영화는 2000년대에 나왔으니 이 두 케이스가 훨씬 먼저 나왔다. * 또한 '''컴퓨터게임 [[삼국통일 대륙을 꿈꾸며]] 역시 이 영화와 거의 같은 사투리 설정을 사용했다.''' 참고로 1999년작으로, '''영화보다 4년이나 일렀다.''' * 꽤 예전에 나온 영화라 당시 출연한 단역들 중에 뜨게 되는 배우들이 많다. 이 영화를 보다가 어 이 배우 여기 나왔구나 싶은 얼굴들이 굉장히 많다. 부여태 역을 맡은 [[임형준]], 임자 역의 우현, 문지기로 위장한 신라 첩자역의 [[김병철(배우)|김병철]], 암호 해독관 역의 [[정해균]], 신라 뻐꾸기 역의 [[조달환]] 등. 감독 이준익도 백제군 북치는 병사로 나왔다. * 백제 병사들이 최종전 전에 백마를 죽여 피를 입에 바르는 장면을 잘 보면 죽었을 백마가 귀를 꿈틀대고 있다. 더미 등이 아니라 진짜 백마를 눕혀놓고 찍은 것이다. DVD에 포함된 다큐멘터리 촬영장면을 보면, 카메라에 보이지 않는 장면에서 촬영스태프가 말 머리를 누르고 있었다. * KBS 드라마 [[대왕의 꿈]]의 황산벌 전투는 이 영화를 오마쥬하거나 모티브로 따온 듯한 연출이 존재한다. 김유신과 계백이 바둑을 두는 장면이라거나 계백이 죽기 전 부하 장수를 탈출시키는 등이 있다. * [[너의 목소리가 보여 7]]에 이 영화의 주연인 [[박중훈]]이 출연했는데, 미스터리 가수로 황산벌에서 박중훈의 딸 배역을 맡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등장했다. 하지만 아니었고, 급격하게 이 실제 배역을 맡은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 SBS 드라마 [[천년지애]]도 황산벌의 연장선이라고 볼수있다.[* 다만 천년지애에선 황산벌 전투씬이 안 나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