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황안(가수) (문단 편집) == 친중 행적 == 그가 주로 활동했던 1980~90년대에는 중국 시장이 별 볼 일 없었다. 그래서 황안도 대만 시장을 중심으로 활동했고, 애국 마케팅의 일환으로 대만 국기를 들고 춤추는 등의 퍼포먼스도 많이 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중국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급성장하게 된다. 당시 중국은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획일적이고 경직된 사회 분위기 때문에 문화예술기반이 씨가 말라버려서 이렇다 할 대표 가수나 컨텐츠가 없었다. 그래서 이 컨텐츠 부재의 공백을 파고든 [[K-POP]]이 흥했으며, 90년대까지만 해도 주로 [[광동어]]로 활동하던 홍콩, 대만 가수들은 [[표준중국어]]로 음반을 냈다.[* J-POP의 경우 중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도입을 꺼렸다. (하지만 아이러니한게 중화권 가수들이 부르던 노래 중엔 일본 노래의 번안곡이 매우 흔했다.) 그리고 1990년대에도 광동어와 표준 중국어 2개 언어로 음반을 내던 유명 가수도 꽤 있었다.] 반면에 황안은 고향인 대만을 비하하고, 대만은 중국의 1개 성에 불과하니 어서 중국의 품에 안겨야 한다느니 하며 모국 비하적인 언동으로 대만에선 어그로를 끌고 중국에선 열렬한 지지를 받는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대만 출신의 연예인들에게 대만 비난을 충동하며 사상 검증을 요구해 광역 어그로를 끌었으니, 이는 [[매카시즘]], [[타진요]], [[왓비컴즈]]의 행위와 비슷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선 저 하나의 중국 주장을 신봉하는 인구가 절대 다수이기 때문에 대만 쪽 인사들이 반발하며 명예훼손으로 황안을 고소하더라도 판결을 내릴 판사가 중국의 눈치를 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대만은 중국의 영향력을 결코 무시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