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황제 (문단 편집) == 어원 == 황제는 최초로 중국 전국을 통일한 진나라의 왕 조정(趙政)[* 진시황은 영(嬴)성 조(趙)씨이며 이 시기 중국의 여성들은 성을 썼고 남성들은 씨를 썼다. 시간이 흘러 성과 씨의 구분이 불분명해지면서 진시황의 이름이 조정 대신 영정이라고 잘못 알려지기도 하였다.]이 새롭게 만든 [[천자]]의 칭호이다. 진시황 이전에는 [[주나라]]의 왕이 천자였고, 그러므로 천자의 칭호는 '왕'이었다. 이후 주나라의 권위가 약해지기 시작한 춘추시대에 들어서면서 주나라 밑의 [[제후]]들이 주나라의 종주권을 부정하기 시작하였으나 대부분은 오등작 직위를 취했고 아직까지 왕의 칭호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초나라에서 스스로 '왕'을 칭했으나 주나라를 비롯한 다른 제후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국시대]] 말기에 주나라 [[천자]]의 권위가 완전히 땅바닥에 떨어지고 제후들이 너도나도 왕을 칭하게 되자 왕이라는 작위의 가치가 떨어졌고, 이 왕들을 모조리 정복하고 전국을 통일한 시황제가 새롭게 한 급 올려서 황제라는 자리를 새로 만들면서 이 때부터 황제가 곧 천자를 의미하게 되었고 왕 작위는 황제보다 한 단계 밑으로 취급받게 되었다.[* 최초로 황제 칭호를 사용한 진시황 사후 진나라가 쇠락하자 [[항우]]와 [[고제(전한)|유방]]이 거병하던 시기에는 진나라 3세 황제 [[영자영|자영]]이 자진해서 왕으로 직위를 낮추기도 한 사례가 있었으니 황제는 왕보다 한단계 높은 직위였음이 분명해졌다.] 그리고 나중에 한나라와 같은 새로운 왕조를 세운 지도자들도 황제의 칭호를 쓰면서 황제는 곧 중국의 지배자를 지칭하는 칭호가 되었다. 황(皇)과 제(帝)는 [[상나라]] 때부터 [[군주]]를 가리키는 어휘이긴 했으나 보통은 신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옥황상제]]나 [[기독교]] 신의 번역어로 중국에서 사용되는 [[상제]](上帝)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황제라는 단어 자체가 원래 위대한(皇) 하느님(帝)이라는 뜻.[* 서주 시대 청동기에는 황상제(皇上帝)라는 낱말이 쓰여 있는데 위대하신 하느님이라는 뜻이다. 《[[상서]]》 <여형(呂刑)편>에서 이 황상제는 한 글자씩 빠져서 "황제"와 "상제"로 나온다.] 《[[사기(역사책)|사기]]》의 <진시황본기>에 의하면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 왕(王)[* 백스터-사가르(Baxter-Sagart)에 의하면 [[상고음]]은 /*ɢʷaŋ/]을 대신해서 천하의 지배자를 지칭하기에 적합한 명칭을 올리도록 [[이사(전국시대)|이사]](李斯)를 비롯한 신하들에게 요구했다. 이에 신하들이 천황(天皇), 지황(地皇), 태황(泰皇) 중에 가장 존귀한 것은 태황(泰皇)이라면서 태황이라는 호칭을 바치자, 이를 거절하고 태황의 황과 신을 뜻하던 제를 붙여 직접 만든 것이 황제(皇帝)[* Baxter-Sagart의 [[상고음]] 재구 소리값은 /*ɢʷˤaŋ tˤek-s/이다. 중세 소리값인 [[중고음]]으로는 /ɦwɑŋtei/, 현대 [[표준중국어]]로는 huángdì라고 읽는다. 청나라를 통치한 만주 황실의 [[만주어]] 발음으로는 (hūwangdi)이다.]라고 한다. 그 이전에도 [[삼황오제]]나 황천상제(皇天上帝) 등의 단어에서 보듯이 황(皇)이라는 단어와 제(帝)라는 단어가 각각 사용되었지만, '황제'라는 합성어를 만든 것은 진시황이 처음이다. 그리고 황제라는 어휘가 널리 사용되면서 오히려 황(皇)과 제(帝)는 황제라는 말의 약자로 여겨졌다. 황제를 구성하는 두 단어인 황과 제 사이에서도 의미 차이가 있다. 기원부터가 왕(王)의 상위호환격의 위대한 자,라는 뜻이였던 황(皇), 제사장, 신 등의 의미가 있는 제(帝). 즉, 황은 권위 있고 위대한 존재라는 개념이며, 제는 실질적인 통치자로서의 개념이 강하다.[* 실제로 3황(천황, 지황, 태황 혹은 태호 [[복희(중국 신화)|복희]], 염제 [[신농]], [[황제(중국 신화)|황제]] 헌원)은 [[사마천]]의 시대에 이미 전설 속 인물로 여겨졌다. 반면에 5제는 실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졌는데, 전근대 동아시아인들이 역사상 가장 태평한 시대로 미화하는 요순 시대의 요(堯) 임금과 순(舜) 임금은 5제의 마지막 2명에 해당한다.] 그렇기에 한나라 시대에 황제의 아버지로서 명목상의 존칭을 받을 때는 [[태상황]]이라고 불렀지 통치자의 '제'를 붙이지 않았다. 《[[한서]]》에 안사고(顔師古)는 이렇게 주석을 달았다. "천자의 부친이므로 '황'이라고 한다. 정치에 관여하지 않으므로 '제'라고 하지 않는다." 또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하고 있을 때는 태상황제라고 불렸다. 이처럼 황과 제 양자가 거의 동격이기는 하나 실제로 '황'은 황제의 상징어에 가깝고, '제'는 실질적인 권한의 의미가 부여되어 있었다. 한편, [[서양]]에서 황제를 뜻하는 단어는 모두 [[로마 제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 로마 황제의 칭호인 [[임페라토르]](Imperator)로부터 [[엠페러]](Emperor)가 파생되었으며, 황제는 아니었지만 황제와도 같은 권력을 휘둘렀던 로마의 정치가 [[율리우스 카이사르]]로부터 [[카이저]](Kaiser), [[차르]](Царь) 등이 파생되었다. 로마제국을 개창한 옥타비아누스는 공화정이라는 틀을 유지하는 선에서 자신의 위치를 가장 높게 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아우구스투스(Augustus, 존엄한 자), 임페라토르(Imperator, 전 군의 [[임페리움]]을 지닌 자/군 최고사령관), [[폰티펙스 막시무스]](Pontifex Maximus, 최고 제사장)>, 프린켑스(Princeps, 시민의 제1인자), 트리부니키아 포테스타스(Tribunicia potestas, [[호민관]]의 특권을 가진 자)'''등의 칭호를 사용하였는데, 각각이 모두 로마 공화정체에서는 극존칭들이였지만, '''황제'''라는 의미와 동일한 것은 아니였다. 따라서 역사학에서는 이를 '''원수정'''이라고도 하는데, '''원수'''로 번역할 수 있는 명칭은 '''프린켑스'''이다. 이후 동방의 [[전제군주제]]가 수용되면서 황제의 의미를 가진 명칭은 '''아우구스투스'''가 되었고, [[부황제]](副皇帝)로 '''카이사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 또한 아우구스투스가 사실상 황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카이사르로부터 승계받은 군단 때문이었는데, 이 때문에 '''임페라토르'''라는 명칭도 황제의 의미로 쓰였다. 이후 임페라토르가 공문서 등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게 되면서 아우구스투스를 대신해 현재의 황제라는 의미로 굳어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