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황지우 (문단 편집) == 일생 == [[1952년]] [[1월 25일]] [[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해남)|북일면]] 신월리 배다리마을의 빈농가에서 아버지 황길주(黃吉周, 1917. 3. 2 ~ 1975. 7. 24)와 어머니 [[보성 선씨]] 선귀례(宣貴禮, 1920. 7. 15 ~ ?) 사이의 4형제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56년 가족들을 따라 전라남도 [[광주광역시|광주시]](現 [[광주광역시]])로 이주했고, 광주중앙국민학교, [[광주서중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시에 재수하여 1972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철학과]] [[미학]] 전공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1973년 [[박정희]] [[유신정권]]에 반대하는 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투옥되었고, 강제로 입대했다. 1976년 제대해 복학했다. 1980년 봄에 [[5.18 민주화운동]] 가담으로 구속되었는데, 1979년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서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었던 그는 구속된 탓에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제적당했다. 경찰에서 고문 끝에 풀려난 뒤 1981년 [[서강대학교/대학원|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 입학하여 1985년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https://library.sogang.ac.kr/search/detail/CATTOC000000203133?mainLink=/search/toc&briefLink=/search/toc/result?q=%ED%99%A9%EC%9E%AC%EC%9A%B0_A_bk_0=jttjtjttj_A_st=KWRD_A_si=TOTAL|#]] 이후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에 들어가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1994년]]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활동하다가 1997년에 [[한국예술종합학교/학부|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장을 거쳐 2006년 3월부터 2009년 5월까지 제5대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https://www.karts.ac.kr/main/index.do?menuId=010103000000#none|역임했고]], 현재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교수로 재임 중에 있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연혁'을 입선하였고 '나는 너다'는 시문에서 '''마르크스주의적인 내용'''으로 한 때 논란이 되었으나 이것은 큰형인 혜당(慧撞, 1938. 12. 14 ~ ) 스님[* 속명은 황승우(黃承祐). 1939년 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에서 태어나 [[광주교육대학교|광주사범대학]], [[전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86년 [[동국대학교 대학원|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에서 선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한민국 육군|육군]]에서 [[통역장교]], 번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목포]] [[문태중학교]]·[[문태고등학교]], [[광주서중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 [[전남고등학교]], [[광주교육대학교]] 등에서 [[영어]] 교사 및 강사를 지냈다. 이후 한국불교 태고종 선암사에서 득도했다. 저서로는 '스님 어떻게 영어를 그렇게 잘하십니까', '아시게나, 우리가 선 이 땅이 바로 낙원이라네', '룰루랄라 영어 발음' 등이 있다.]과 철학자이자 노동운동가였던 남동생 [[황광우]][* 1977년 서울대 사회과학대 경제학과에 입학했으나 긴급조치 9호 위반 및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제적 당한 뒤, 1998년에 복교해 뒤늦게 졸업했다. 공장에서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정인'이라는 필명으로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 같은 책을 썼으며 1980년대 대학가의 필독서였다. '철학 콘서트'의 저자.]에게 주는 헌시(獻詩)로 알려졌다. 한국 해체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수 없는 시인으로 도표나 특수 문자, 그림들을 도입해 혁신적인 시작법으로 유명해졌다. 후기로 갈수록 연극에 관심이 많아져 연극적인 요소들이 강해지는 편. 가족 이력 때문에 불교적인 색채도 있는 편이다. 전반적으로 군부 독재 시절 한국의 암울함을 풍자하거나 저항하는 내용들이 많으나, 서정시도 자기식으로 구사해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획득했기도 했다. 친구였던 [[이성복]]과 더불어 1990년대 젊은 시인들에게 많이 영향을 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