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황철 (문단 편집) == 그 외 == 황철은 월북 후 [[유부녀]]였던 문정복과 [[결혼]]하였다고 남한에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황철의 부인 이정순과 황철의 자식들도 이후 모두 황철을 따라 월북한 것으로 볼 때 이는 사실무근으로 보인다. 참고로 [[신상옥]]&최은희 부부의 납북, 탈북 수기에서 최은희는 같은 동네에 살았던 문정복에게 부탁하여 극단 아랑에 연구생으로 입단한 것을 계기로 배우가 되었기 때문에 문정복과 절친한 사이였다고 하고, 또 문정복을 [[북한]]에서 만났다고 하는데, 문정복은 여동생 문정숙이 남한의 유명한 배우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최은희는 문정복이 사는 [[아파트]]에도 가 보았고, 그 아파트는 냉난방조차 제대로 안 될 정도로 낡았고, 방 두 칸이 딸린 12평의 허름하고 좁은 아파트였다고 한다. 문정복은 그 아파트에서 [[재혼]]한 후 낳은 [[아들]]과 단 둘이 살고 있었다고 하는데, 최은희는 그 아들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수기에서 밝히지 않았지만, 정황상 황철의 아들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1990년]] [[5월 4일]], 문정복의 부고 소식이 남한에 알려진 후 문정복의 아들인 [[배우]] [[양택조]]는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에 20대의 남동생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는데, 1990년에 20대였다면 1960년 이후에 태어났다는 이야기인데, 1961년에 사망한 황철이 문정복의 아들의 아버지일 확률은 떨어진다. 물론 확인된 사실이 아닌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그러나 최은희는 수기에 문정복의 아들의 나이가 21세라고 적었고, 수기를 읽어보면 최은희가 문정복을 만난 시기가 대략 1984년 쯤으로 추정되는데, 그렇다면 "북한에 20대의 남동생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라는 문정복 사망 당시의 양택조의 인터뷰 내용과도 맞아 떨어진다. 물론 양택조의 그 인터뷰도 사실 최은희에게서 전해 들은 사실을 말한 거겠지만... 어쨌건 황철은 이정순하고 사이에서 3남 4녀를 두었으며, 황철의 자녀들은 북한에서도 고위직에 있다고 한다. 1961년 사망한 게 되려 그에게는 복이었다. 1967년 북한에서는 [[도서정리사업]]이 벌어져 [[심영(배우)|심영]], [[최승희]] 등 북한 연예인들이 한꺼번에 숙청으로 쓸려 나가버렸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황철은 이미 세상을 떠난 지 한참 지났기 때문에 숙청할 거리가 없고 할 수 있는 처벌이라고 해 봐야 [[부관참시|그의 묘소에서 시체를 꺼내 훼손하는 게]] 전부이니 굳이 처벌할 이유도 없었다. [[분류:북한 남배우]][[분류:청양군 출신 인물]][[분류:1912년 출생]][[분류:1961년 사망]][[분류:애국렬사릉 안장자]][[분류:월북한 인물]][[분류:야인시대/등장인물]][[분류: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분류:실향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