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황화론 (문단 편집) == [[미국]]에서 == 그런데 정작 원조인 유럽에서는 [[높으신 분들]]의 정치적 수사로 쓰였던 황화론이 이민 사회인 미국에 소개되고 나서는 약간의 의미 변화를 겪은 뒤 그야말로 '''대박'''을 친다. 미국이 "[[도금 시대]]"라 불리는 호황기가 끝나가면서 몇몇 하류층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중국인]] 이민자들[* 속어로 "쿨리(Coolie)"라고 칭하고 있다.]이 자신들의 일자리와 기회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는 인종갈등론이 퍼지기 시작했는데, 이 "황화(Yellow Peril)"라는 말이 자신들의 위기감과 새 인종갈등론을 설명하기에 안성맞춤인 단어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 당시 미국의 시대상을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표현이 바로 이른바 "더러운 노란색 폭도들(Filthy Yellow Hordes)"이라는 문구. 게다가 미국의 [[아시아계 미국인]]들에 대한 황화론은 굉장히 오래 가서 (처음에는 [[중국계 미국인]]을 주로 타겟으로 했지만 러일전쟁 이후 일본인들의 활동반경이 넓어지자 [[일본계 미국인]]들에게도 확대되었다.) 1917년의 이민제한법안과 1924년의 국적식별법안은 황화론이 주 원인이 된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20년대는 "[[광란의 20년대|재즈 시대(Jazz Age)]]"라고 해서 곧 벌어질 [[대공황]] 시기보다 훨씬 더 풍요로웠는데도 저랬다. --결국 핑계거리가 필요했을 뿐-- 이러던 황화론에 일본의 [[진주만 공습]]은 말 그대로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어 버렸다. [[백악관 행정명령 9066호|일본계 미국인들은 모두 강제수용소에 갇히고]], 황화론은 아예 태평양 전선에서 맞닥뜨린 동양인들을 침팬지로 묘사하는 수준까지 간다.[* 심지어는 어린이용 학습동화의 저자로 유명한 [[닥터 수스]](Dr. Seuss)까지 저런 포스터를 그리던 시절이다!] 거기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나서도 중국의 공산화와 [[냉전]]의 확산으로 미국의 황화론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황화론은 [[냉전]]으로 미국과 소련이 군비증강 하는 동안 일본의 경제가 고속성장을 하여 1980년대 일본이 미국의 경제 패권 자리를 위협하자 더 극에 달한다. 단적인 예로 1988년 기준으로 시가총액으로 따졌을 때의 "세계 50대 기업" 중 33개가 일본 기업이었다. 다만 이 시기 직후는 황화론이 사그라드는 계기가 됐는데 일본의 [[버블경제]]가 몰락하게 되고 마침 동시에 냉전도 끝이 나면서 (물론 중국과는 [[리처드 닉슨]] 때 이미 관계가 완화되었지만) 황화론이 미국 사회에서 조금씩 옅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LA 폭동]] 때 두순자 사건을 집중보도 하기에 바빴던[* 미국인들, 심지어는 [[한국계 미국인]]들도 잘못 아는 경우가 있는데 LA 폭동의 공식적인 시발점은 보통 로드니 킹 사건으로 본다. 적어도 현대사학계에서 LA 폭동의 시발점이 두순자 사건이었다고 공공연히 주장하는 학자는 없다고 봐도 된다.] 미국 언론들을 생각하면..... 하지만 이후 중국의 국력이 급상승하면서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황인 전반에 대한 경계심으로 번지는 경우가 함께 나오고 있다. [[중국 위협론]] 문서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