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황화론 (문단 편집) == [[유목제국]]들과의 연관성 == 엄밀히 말해서 "황화"라는 말은 17-18세기 당시에는 조어되지도 않았고 당시의 유럽인들도 청나라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갖기는 했어도 심각한 경계심 같은 것을 가지지는 않았다. 고로 황화론이 청나라(더 거슬러가서는 "몽골 제국")에 의해 시작됐다는 주장은 사실 아귀가 잘 맞지 않는다. 적어도 유럽에서의 황화론은 19세기 말 빌헬름 2세의 정치적 계략에 온 유럽인들이 수선을 피운 소동이라고 보는 게 맞으며, 유럽인들을 이렇게 행동하게 한 "신빙성"이란 것도 사실 일본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매우 성공적인 산업화를 이뤘기 때문이다. 사실 17-18세기 당시의 유럽인들은 청나라에 대해 막연한 환상, 혹은 동경을 갖고 있었지 경계심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오히려 [[시누아즈리]]라고 해서 당시에 떠오르던 [[로코코]] 예술에 중국풍을 가미하는 게 대유행을 했고 이 때문에 온갖 경로에서 중국 예술품이나 도자기 등을 있는대로 긁어모았다. 이 시누아즈리는 사실 꽤 오래된 전통이었기 때문에 [[명나라]]와 그 뒤를 이어 대륙을 먹은 청나라가 괜히 아시아의 [[은]] 먹는 하마라고 불린 게 아니다. 청나라 때 가서는 청 정부가 소유한 은이 많다보니까 당시에 거두던 [[인두세]]를 토지세로 바꿔버렸다.[* 보통 [[지정은제]]라고 한다. 청나라 중기에 청의 인구가 폭발한 원인을 여기에서 찾는 학자들이 많다.] 황화론을 청나라의 중흥과 연결짓다 몽골 제국에서까지 기원을 찾는 건 사실 '''신빙성이 희박'''하다. 결론부터 확실히 긋자면 동서양과 시대를 막론하고 제대로 배운 호사가들 중에서 몽골 제국의 원 황실과 [[만주족]]을 단순히 소위 "시베리아 유목계"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해서 아예 '''동족'''으로 여기는 경우는 없었고 지금도 없다. 몽골의 원 황실과 근세에야 "만주족"이라는 새 이름을 쓰기 시작한 [[여진족]], [[알타이 제어]] 문서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이들은 언어의 어족부터가 다르다.[* 동서양의 교역은 생각보다 매우 활발한 편이었다. 당나라 시대에는 중국에 가톨릭 교회와 이슬람 사원이 존재했고, 더 과거로 가면 기원전의 알렉산더 대왕도 "인도 너머의 제국"을 언급하는 등 서로의 존재를 확실히 알고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