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회양군 (문단 편집) == 역사 == [[삼국시대]] 때 [[고구려]]의 각련성군(各連城郡)이었다. 이후 [[신라]]가 차지한 후 신라 [[경덕왕]] 때인 757년 전국 지명 한화정책에 따라 연성군(連城郡)으로 고쳤다. 사실 고구려 때 이름에서 한 글자를 줄인 것이다. 신라 [[9주 5소경]] 중 [[삭주]]에 소속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교주]](交州)로 불렸다. 이는 지금의 [[강원특별자치도]]의 [[영서]] 지역과 [[경기도]] 일부 지역에 해당하는 [[행정구역]]인 [[5도 양계]] 중 [[교주도]] 명칭의 유래가 되었다. 교주도는 [[교주도|회양도]], [[교주도|춘주도]] 등으로도 불렸는데, 회양도의 '''회양'''은 이후 교주에서 바뀐 지명이고 춘주도의 '''춘주'''는 [[춘천시|춘천]]의 옛 지명이다. [[정철]]의 [[관동별곡]]에서도 언급되듯이 [[일제강점기]] 이전에도 존재한 군이다. 조선시대 도호부가 놓였다가 1895년 군이 되었다. 1906년 [[수입면]]이 양구군에 편입되었다. 회양군의 [[철령]]은 [[31번 국도]]가 통과하고 강원도와 함경남도의 경계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시절 중부지방과 함경도를 잇는 중요한 교통로로 포함 된다. 원래는 면적 1,899.8km²로, [[홍천군]]보다도 넓어 [[미수복 강원도]]를 포함한 전 강원도에서 가장 넓은 군이다.[* 다만 [[8.15 광복]] 전 원래의 홍천군은 현재의 홍천군보다 면적이 작았음에 유의. 대신 내면을 홍천군에 넘기기 전의 인제군(약 2,000km²)이 회양군보다 더 넓었고 강원도 관내에서도 면적이 제일 컸다.] 다만 북한 치하에서 [[1952년]] 내금강면이 [[금강군]]으로, 난곡면 일부가 [[평강군]]에 이관되며 면적이 크게 줄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