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회제(서진) (문단 편집) == 포로 == 낙양 함락으로 30,000여 명이 살해당했고 사마치 등은 [[유총(전조)|유총]]의 나라 한의 수도 평양으로 압송되었다. 312년 유총은 그를 회계공 의동삼사에 봉했다. 어느 날 유총은 그를 연회에 초대해서 조용히 말했다. 사실 유총과 사마치는 사마치가 예장왕이던 시절에 서로 만났던 일이 있어 안면이 있었기 때문에 유총이 물어보자 대답했다. ||유총: 공이 옛날 예장왕이던 시절 짐은 [[왕제(서진)|왕무자]]와 함께 공을 방문한 적이 있지 않소? 그때 왕무자는 짐을 칭찬했고 공은 "당신의 명성을 들어서 알고 있소."라고 했소. 그리고 공은 손수 작곡한 음악을 보여 주었고 왕무자와 짐에게 작사를 부탁했소. 우리는 공을 찬양하는 가사를 썼는데 공을 정말 좋아했소. 그리고 활을 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짐은 열두 번 명중시켰고 왕무자와 공은 아홉 번씩 명중시켰소. 그리고 짐은 자궁(뽕나무 활)과 은연(은 벼루)를 선물로 받았는데 공은 이를 기억하고 있소? 사마치: 신이 어찌 감히 그걸 잊겠습니까? 다만 후회스러운 것은 [[용]](龍)을 미처 몰라뵈었다는 것을 한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 칭찬을 들은 유총이 이에 감탄하며 말했다. 유총: 공의 집안에서 어쩌다가 [[팔왕의 난|일족끼리 서로 살육]]을 벌이게 되었소? 또 공은 이를 어떻게 생각하오? 이에 사마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사마치: 위대한 한나라는 장차 하늘의 뜻에 감응하여 천명을 받았던 연고로 폐하를 위해 스스로 서로 몰아내고 죽였으니 이는 거의 하늘의 뜻이지 사람이 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또 만약에 신의 집안이 무황제([[사마염]])의 뜻을 받들어 9족이 단합된 상태로 있었다면 어떻게 폐하께서 황제가 되셨겠습니까?|| 이에 유총은 깊이 감명받았고 둘은 밤새도록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날 유총은 아끼던 첩 소유귀인[* 작은 귀인 유씨라는 뜻으로 유총이 첩으로 삼은 [[유은(전조)|유은]]의 두 딸과 그 두 딸들이 낳은 네 명의 딸들 중에 가장 어린 여자다. 결론은 유은의 손녀 중에 가장 어린 여자를 말한다.]을 사마치의 처로 삼게 했다. 그러나 유총은 점차 승리에 대한 도취감으로 사치를 부리며 부패해졌고 정신도 혼탁해졌으며, 결국 사마치의 암운도 여기서 끝이 아니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