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효공인황후 (문단 편집) == 상세 == 14살 때 궁녀로 뽑혀 [[강희제]]의 신변에서 수발을 들었다. 처음엔 오상재로 봉해졌다. 강희 17년에 [[옹정제|아이신기오로 인전]]을 낳았고, 그 다음해에 덕빈으로 봉해졌다. 그 후 덕비로 봉해지고 친아들 인전이 황위에 오르자 인수황태후(仁壽皇太后)로 봉해지나 곧 사망하였다. [[옹정제]]를 포함해 슬하에 3남 3녀가 있다. 특히 셋째 아들인 14황자 인티(胤禵, 윤제)를 편애했다고 하는데 친형제 지간인 인전과 인티가 사이가 안 좋아지자, 덕비 역시 친아들인 인전과 사이가 안 좋아졌다고 한다. 그 외 둘째 아들인 6황자 윤조(胤祚)는 5살에 요절했고, 첫째 딸은 2달 만에 사망했으며, 셋째 딸은 11살에 요절했다. 둘째 딸 고륜온헌공주[* 강희제와 황태후가 가장 아꼈던 공주라고 한다. 다른 공주들은 거의 다 몽골로 시집보냈지만 온헌공주만은 [[만주족]]과 결혼해 가까이 살았다.]는 퉁기야(佟佳) 가문의 순안안(舜安顔)과 혼인했는데 그는 옹정제의 양모인 효의인황후의 조카였다. 여담이지만 1697년 초 즈음에 조금 아팠던 것으로 보인다. 강희제가 1697년 2월 8일 화이라이(懷來) 현에서 태감 구원싱에게 보낸 편지에, "내가 떠나올 때 덕비가 몸이 좀 안 좋던데… 이제는 병이 완전히 다 나았겠지?"라며 자상하게 안부를 물어보는 부분이 있다.[* 이외에도 강희제는 덕비의 친정 가문도 많이 챙겨줬다. 덕비의 여동생들을 자신의 정실황후이자 [[청나라]] 최고의 명문가 뉴호록씨 출신인 효소인황후의 남동생들에게 시집보내줘 친정의 뒷배를 든든히해줬다. 특히 덕비의 여동생 중 한명은 알필륭의 적자인 아령아의 정실부인이 되었다. 참고로 덕비의 여동생이 낳은 아령아의 딸은 [[옹정제]]의 측근이자 이복동생인 과의친왕 윤례의 적복진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